[이현정의 월드 클래스]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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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팀장

3만 명 가까운 민간인 희생자와 700만 명에 달하는 난민, 전 세계를 벼랑으로 내몬 '살인물가'와 식량위기 등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참상을 목도하지 못한 것일까. 한쪽에서는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베’ 사망 후 일본 정치권이 아베의 유지를 받들겠다며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자 미국은 또 거들고 나섰다.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전쟁 포기’ 헌법은 1946년 승전국이었던 미국의 맥아더 사령부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월 미·일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서 보듯 '역내 선을 위한 세력으로서 강력한 일본'을 지지하고 일본의 방위력 강화를 반기고 있다.

이에 질세라, 중국에서는 군사력을 대폭 증강해 일본의 군비 확장을 무력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략 핵무기 역량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우크라이나 다음은 동아시아”라는 누군가의 일성에 ‘전쟁 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듯, 중국, 대만, 일본 그리고 한국과 북한을 둘러싼 긴장 구도가 빠르게 ‘짜여지고’ 있다. 미국은 틈만 나면 대만을 앞세워 중국을 자극하고 있고, 중국도 맞불을 놓고 있다. 또 북한은 잊을 만 하면 미사일을 쏘아올린다. 여기에 일본까지 가세했다.

마크 에스퍼 전 미 국방부 장관은 12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출연해 “중국과 대만이 무력 충돌해 미국이 개입한다면 한국 역시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게 될 것”이라고 운을 띄웠다. 그는 일본과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하지 않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며 자주국가 한국의 개입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보여온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태도를 비판하고,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악화시키고 이웃을 강압하려는 공산주의 국가를 상대로 한국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압박했다. 인도·태평양의 안보협의체 쿼드에도 한국이 가입해야 하고, 한반도에는 F-35 전투기를 배치해야 한다고도 했다. 미국이 그리는 ‘한국의 전쟁 가능 국가화’다.

그는 이것만으로 모자랐는지 “남북 간의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도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게 될 것”이라며 ‘피아’를 분명히 주지시켰다. 냉전시대, 가치외교의 시대로 들어섰음을 알리고 ‘니편 내편’의 경계를 확실히 한 것이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 대리전을 치르는 우크라이나를 보며, 한 국가의 운명이, 한 개인의 운명이 특정 국가 지도자의 선택과 판단에 좌우될 수 있음을 똑똑히 봤다. 일본, 한국까지 전쟁 태세를 갖추게 하고 대만을 전면에 내세워 중국을 끊임 없이 자극하는, 누군가가 그린 말판 위에 한국이 서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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