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것들] ‘싸이 흠뻑쇼’는 어떻게 서울 vs 지방 ‘빚쟁이 논쟁’ 불렀나?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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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주니어보드 '요즘것들']

5월 25일 오후 서울 성동구 캠퍼스에서 열린 가수 싸이의 한양대 축제 ‘2022 라치오스’ 공연 모습. 연합뉴스 5월 25일 오후 서울 성동구 캠퍼스에서 열린 가수 싸이의 한양대 축제 ‘2022 라치오스’ 공연 모습. 연합뉴스

가수 싸이의 ‘흠뻑쇼’가 그 가지 많은 논쟁의 시작이었다. 싸이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공연 한 번에 식수 300t을 쓴다고 말했다. 한 배우가 트위터에 올린 “물 300t 소양강에 뿌려주면 좋겠다”는 일침은 논쟁에 불을 지폈다. 유명 논객도 등장했다. 배우의 지적은 “정의로운 나에 대한 과시”일 뿐 가뭄과 싸이 콘서트는 무관하다는 것. 접전이 팽팽해지자, 이때다 싶어 누리꾼들이 너나 없이 참아왔던 말을 풀었다. 논쟁은 커졌다.

흠뻑쇼로 시작한 논쟁은 곁가지로 빠지다가 ‘지방 대 서울’의 구도로 흘러갔다. 소양강 가뭄이 주목받자, 강원도민들은 SNS에 말라붙은 소양강 강바닥 사진과 저수지 물이 졸아들어 생활용수를 배급받고 있다는 경험담을 올렸다. 둑 터지듯 지방살이 억울함의 ‘간증’이 쏟아졌다. 이 와중에 서울사람들은 무심결에 “우리 집은 물 잘 나오는데” 말했다가 된통 얻어맞았다. 트위터 사용자 @Dunexxx는 이렇게 썼다. “서울힙스터 ***들아 서울 도시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당장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시골 농촌 한 번만 둘러봐라. 가뭄 때문에 하천 다 말랐다.”


한 번 공연에 식수 300t 사용

SNS서 소양강 가뭄 빗대 논란

지방 대 서울 구도 논쟁 확대

강원도 물·부울경 전기 쓰면서

서울이 떠넘긴 빚 인식 못 해

지방살이 빈곤한 상상력 탓도


황무지로 변한 강원도 인제군 소양강댐 상류 소양호 최근 모습. 연합뉴스 황무지로 변한 강원도 인제군 소양강댐 상류 소양호 최근 모습. 연합뉴스

지역민들은 서울에 물을 끊어버려야 서울사람들이 정신을 차린다고 말했다. 얻어맞다 억울해진 서울사람들은 “이럴 거면 서울에서 나오는 지방교부금도 끊어 버려라”라고 발끈했다. 물론 지방교부금은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하는 것으로, ‘서울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다만 이 난장에서 서울은 강원도에 물을, 강원도는 서울에 돈을 빚지고 있다는 사람들의 속 생각이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그런데, 서울이 빚지고 있는 게 어디 강원도 물뿐인가. 서울은 부산·울산·경남에 전기를, 인천에는 쓰레기를 빚지고 있다. 국내 전체 원전 24기 중 8기가 부울경에 있다. 지난해 전국이 사용한 에너지 가운데 원전이 책임진 비중은 27.4%였다. 인천 서구의 쓰레기 매립지는 인천뿐 아니라 서울과 경기도의 쓰레기 폐기물을 떠안는다.

서울과 지방 간 채권채무관계는 SNS 싸움처럼 간단하지 않다. 강원도 물이 마르면 피해는 비단 강원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강물을 끌어 키우는 고랭지 배추, 무 가격이 오르면 전국 식탁에 오르는 김치 가격이 오르고, 김치 가격 상승은 전 국민의 ‘김치 가뭄’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식탁부터 전기, 매일 버리는 쓰레기까지 생각하지도 못한 일상 곳곳에서 한반도 전역은 촘촘히 연결돼 있다. 실제로 ‘원전 도시’에서 살아본 적 없고, 가뭄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연결을 체감하지 못하고, 그 여파를 상상하지 못한다.

지방살이에 대한 빈곤한 상상력은 지역민의 존재를 자주 지운다. 고리원전 30km 안에 사는 부산과 울산 시민은 382만 명이다. 고리원전 10km 이내 거주하는 기장, 월성, 울진 주민 618명은 2014년부터 갑상선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원전의 방사능과 297명의 몸에 생긴 암세포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려고 소송에 나섰다. 부산에서 탈핵활동을 하는 박상현 활동가는 "부산은 고리원전 반경 30km 이내에 해운대구, 수영구, 부산진구 등 주도심이 몰려 있다. 부산시민들은 중앙이 지방에 전가한 비용을 떠안고 산다"며 "보관만 10만 년 해야 하는 핵연료 폐기물 처리 방법은 논의가 미뤄지기만 하다가 결국은 지방에 책임이 넘겨진다"고 말했다.

서울 '토박이'에게 지방은 주거지가 아닌 방문지다. 여행을 위해 방문만 하는 지방에서 생계로 이뤄지는 일이 서울로도 연결돼 있다는 것을 서울사람들은 잘 떠올리지 않는다. 서울사람이 보는 잠깐의 지역 풍경은 대부분 한가하기 때문이다. 또 주로 소비하는 지역은 서울, 만드는 지역은 서울 바깥이기 때문이다. 소비하는 동안에는 만드는 과정을 굳이 상상하지 않는다. 서울사람이 지방살이를 경험하지 않았다고 없는 셈 치기에는 지방에 너무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멀어진 거리만큼 연결돼 있다는 감각이 희미해진다 해도 상상력은 남겨야 한다. 부산, 강원도에서 살아본 일은 없다 해도 밥상 위에서, 켰다 끄는 에어컨에서, 내다 버리는 쓰레기에서 이것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지는 그려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물과 돈을 서로에게서 '확' 끊어 버리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진 않을 것이다. 어차피 다들 서로에게 빚지며 지내는 것을 아는 이상, 누구도 떳떳한 처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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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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