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동물 성행위, 최소 4700만 년은 됐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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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화석 동물행동학 / 딘 로맥스

교미 중인 한 쌍의 거북 화석 통해 유추
기생충에 감염, 고통 속에 죽어간 공룡도
화석이 전하는 선사시대 동물의 생존기
화석 주인공 생전 모습 복원 그림도 실어

중국 랴오닝성의 백악기 암석에서 발견된 각룡류 프시타코사우루스 집단의 화석. 이 공룡들이 어린 개체들을 집단 양육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왼쪽의 큰 두개골은 보모 역할을 한 ‘청소년’ 프시타코사우루스의 것으로 추정된다. 뿌리와이파리 제공 중국 랴오닝성의 백악기 암석에서 발견된 각룡류 프시타코사우루스 집단의 화석. 이 공룡들이 어린 개체들을 집단 양육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왼쪽의 큰 두개골은 보모 역할을 한 ‘청소년’ 프시타코사우루스의 것으로 추정된다. 뿌리와이파리 제공

화석은 우리를 타임머신에 태워 과거로 안내한다. 현재를 사는 인간의 손길과 시선이 미치지 않는 암반 또는 지층, 사막의 모래 깊숙한 곳 등에서 발굴되는 화석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생생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왓! 화석 동물행동학〉은 50개의 화석이 전하는 선사시대 동물들의 좌충우돌 생존기를 들려준다. 화석은 말이 없다. 고생물학과 인류학 등이 화석과 씨름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지만 화석이 된 생명체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한다. 그 동물들이 어떻게 먹고 싸우고, 다음 세대를 낳고 길렀는지 등 구체적인 삶의 행위들에 대한 갈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어떤 행위의 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례적인 화석들이 발견된다.

1971년, 몽골 남부 고비사막 깊숙한 곳에서 한 쌍의 서로 다른 공룡 화석이 발견됐다. 한 마리는 멧돼지 크기의 초식 공룡 프로토케라톱스 안드레우시. 다른 한 마리는 칠면조 크기의 육식 공룡 벨로키랍토르 몽골리엔시스였다. 두 마리의 공룡이 싸우는 모습이 간직된 이 화석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석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벨로키랍토르는 발톱을 프로토케라톱스의 목에 찔러넣고, 프로토케라톱스는 죽는 그 순간까지 벨로키랍토르의 앞다리를 놓지 않는다. 쓰러진 프로토케라톱스가 벨로키랍토르의 뒷다리를 짓누르고, 결국 벨로키랍토르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죽어간다. 그리고 화석으로 굳어졌다.


사진은 화석을 복원한 그림. 뿌리와이파리 제공 사진은 화석을 복원한 그림. 뿌리와이파리 제공

2012년 학계에 보고된 교미 중인 한 쌍의 거북 화석은 우리에게 척추동물의 성행위가 최소한 4700만 년은 된 것임을 알게 한다. 한 쌍의 동물이 교미 중에 함께 죽고 온전한 상태의 화석으로 남아 우리 눈에 띄게 될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를 생각하면, 이런 발견이 얼마나 특별하고 이례적인지 알 수 있다.

브라질 남부 산타카타리나주 팀베두술에 가면 거대한 땅굴을 볼 수 있다. 높이 2미터에 폭 4미터, 길이는 총 100미터가 넘는다. 석회 동굴도 화산 동굴도 아닌 이 굴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학자들이 동굴 벽에 난 발톱 자국을 토대로 알아보니, 그 굴을 판 주인은 바로 땅늘보였다. 땅늘보는 이미 멸종했지만, 계통상으로는 현생 나무늘보의 친척뻘 되는 종이다. 나무늘보의 친척들이 이렇게나 커다란 땅굴을 팠다니 의아하겠지만, 몇몇 땅늘보 종은 코끼리만 한 크기에 생김새는 곰을 닮았다. 몸길이는 6미터, 몸무게는 4~6톤에 달했다.

기생충에 감염되어 죽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화석도 있다. 이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턱뼈에는 비정상적인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다. 과학자들은 처음에는 뭔가에 물린 흔적이거나 세균성 감염의 흔적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광범위한 조사 끝에 현생 조류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기생충 감염 질환인 트리코모나스증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례는 조류가 아닌 수각류 공룡에서 조류의 전염성 질병이 발견된 첫 번째 사례로 공룡의 면역반응도 현생 동물들과 비슷했음을 보여준다. 지구 최강의 포식자인 공룡이 조그만 기생충에 감염되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왓! 화석 동물행동학〉에는 공룡의 화석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의 화석도 등장한다. 투구게의 ‘죽음의 행진’, 아래턱의 절반가량이 90도 넘게 꺾인 채 상당 기간 생존했던 어느 해양 악어, 공룡을 잡아먹기도 했던 초기 포유류 레페노마무스, 폭풍우 속에 강을 건너다 떼죽음당한 말과 코뿔소의 친척 브론토데어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의 화석 이야기는 선사시대에 벌어진 동물들의 삶 속에서 벌어진 놀라운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밖에 임신한 수장룡 플레시오사우루스, 리트리버 크기의 각룡류 프시타코사우루스, 1억 2500만 년 전의 원시조류 콘푸키우소르니스, 여우만 한 수궁류 트리낙소돈과 양서류 브루미스테가 등의 화석은 그들의 번식 전략 등을 알려준다.

이 책은 화석 사진과 함께 화석 주인공들의 생전 모습을 자세하고 정교하게 복원한 그림들도 함께 실었다. 고생물 복원그림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인 밥 니콜스는 내장기관의 위치, 깃털의 유무, 화석에 남은 색소, 먹이사슬에서의 위치, 당시의 자연환경 등을 과학적으로 유추하여 정확하고 생생하게 복원도를 제작했다.

저자인 딘 로맥스는 어룡 익티오사우루스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기존 저서로 〈영국 제도의 공룡(Dinosaurs of the British Isles)〉 〈선사시대 애완동물(Prehistoric Pets)〉 등이 있다. 딘 로맥스 지음/밥 니콜스 그림/김은영 옮김/뿌리와이파리/348쪽/2만 5000원.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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