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산 괴담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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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엔 특별히 전해지는 괴담이 없었던 듯하다. 어느 사찰 대웅전 옆이나 해안가 동굴 등에 일본군들이 퇴각하면서 감춰 둔 보물이 묻혀 있다는 ‘금괴설’ 등 주로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이바구’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뿐이다. 효자와 열녀 등을 기리는 구전 설화도 물론 있으나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부산에 더위를 잊게 하는 으스스한 괴담 몇 개가 떠돌기 시작했다. “할매가 미포 앞에 가 달라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연의 일치라 생각해서 한참 가고 있는데, 달맞이 고개를 넘어갈 무렵에 할매가 미친 듯이 웃었다고 합니다. 친구 삼촌이 놀라서 백미러로 뒤를 보니까, 할매 얼굴이 고양이로 변해 가지고 친구 삼촌의 목을 조르려고….”

첫 번째 괴담을 요약하면 부산 달맞이고개에서 택시기사들이 연이어 사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범인은 고양이 귀신. 두 번째 괴담은 부산에 좀비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부산 낙동강 동쪽과 부산외곽순환도로를 따라 방벽이 쌓이고 부산이 폐쇄된다고 한다. 세 번째 괴담은 해운대 근해에 기괴한 물고기 모습을 한 수중 드론이 대거 출현한다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오싹해진다.

하지만 사실을 고백하자면, 이 괴담들은 최근 발간된 〈먹구름이 바다를 삼킬 무렵〉이라는 단편소설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부산에 살거나 연고가 있는 작가들이 지역 특색을 살려 장르소설의 재미를 더했다. 그렇다면 왜 부산을 배경으로 한 괴담 소설들이 등장했을까. 사실 이 소설집은 ‘부산 바닷가에서, 혹은 여행지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책은 없을까’라는 고민의 결과물이다.

인디페이퍼, 미디어줌, 목엽정, 베리테, 예린원, 냥이의야옹, 호밀밭 등 부산의 7개 출판사가 이런 고민에 기꺼이 동참했다. 7개 출판사는 공동 출간·마케팅 프로젝트인 ‘비치리딩 시리즈(Beach Reading Series)’를 기획, 같은 판형의 책 8종을 동시 출간했다. 〈부산 바다 커피〉 〈플로깅plogging〉 〈날아감에 대하여〉 〈부산-포구를 걷다〉 〈우리들의 바다〉 〈바다의 문장들〉 〈라면 먹고 갈래요〉 등이다. ‘내용도, 책 무게도, 가격도 가볍게’라는 기획 의도에 맞게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장르를 150쪽 내외로 구성했다.

7개 출판사는 10년 동안 매년 10종씩, 총 100여 종을 공동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다. 7개 출판사의 열정을 담은 부산 괴담 등이 널리널리 퍼지길 기원한다. 천영철 문화부장 cyc@busan.com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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