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여름에 우리가 읽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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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소설가

나는 책과 휴가, 책과 여름, 책과 즐거움, 책과 휴식처럼 우리가 책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이 우리가 휴가에서 기대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 때 들고간 책은 숙제가 아니라 쉼이니까 말이다.

더위가 기승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보다 폭염 위기 경보가 더 일찍 내려졌다. 유럽을 뒤덮은 폭염은 더욱 심각하다. 스페인에서는 지난 2주 동안 온열질환으로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렇게 숨 막히는 더위에는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다. 여름휴가라는 말은 얼마나 달콤한지, 지난주 친구들을 만나 나는 그것부터 물었다.

“휴가 갔다 왔어? 휴가 계획은?”

대부분은 아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더라도 꿈꾸는 휴가 계획은 있었다. 한 친구는 스위스 리기산맥의 눈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 장엄의 풍경 속에서 한동안 넋을 놓고 차가운 바람을 맞고 싶다고. 다른 친구는 태국 푸껫에서의 휴가를 꿈꾼다. 솜땀과 똠얌꿍, 모닝글로리 볶음을 먹고 오일 마사지를 받고 스노클링을 하는 하루. 또 다른 친구는 제주도로 가고 싶은데 차량 대여 값이 일주일에 백만 원이 넘는다는 걱정부터 먼저 쏟아낸다.

그런 말들 끝에 우리는 휴가지에 꼭 가져가는 것을 얘기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책 얘기가 길어졌다. 북캉스라는 말도 있듯이 한 권 정도는 넣고 가게 되는 것이 책이다. 여행지에서의 책은 우선 가벼워야 한다. 되도록 얇고 글자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지 않은 것이 좋다. 한동안 나는 어려운 고전을 숙제하듯 가방에 넣었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그런 책들은 펼치지도 못하고 짐처럼 들고만 다니다 다시 가져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좋다고 우리는 입을 모은다.

선호하는 책의 분야는 다양했다. 여름이니까 당연히 더위를 식혀줄 스릴러가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 짧게 읽을 수 있는 시집, 가벼운 여행 에세이도 있었다. 소설도 빠지기 힘들다.

“여행지에서 여행 에세이를 읽는 심리는 뭐야?”

안 읽어 봤으면 말을 하지 마, 남의 여행 얘기를 읽는 것은 이상하게 내 여행을 더 풍부하고 깊게 해준다고 말한다. 그럴 것도 같다. 하루키나 이병률의 에세이를 챙겨가는 것이 유행처럼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나는 인생을 관통하고 오롯이 한 시절에 집중하는 소설을 가져간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성장과 사랑의 이야기.

어떤 친구는 제목에 여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책을 가져간다고 했다. 생각보다 많다고 말이다. 나는 〈바깥은 여름〉이라는 김애란 작가의 책이 떠올랐다. 사실 그 책은 겨울의 이야기다.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도 좋겠다 싶다. 〈그 여름의 끝〉은 이십 대의 내가 가방에 늘 넣고 다녔던 이성복 시인의 시집이다. 이렇게 보니 여름이 참 무궁하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책과 휴가, 책과 여름, 책과 즐거움, 책과 휴식처럼 우리가 책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이 우리가 휴가에서 기대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가져간 책 다 읽고 온 사람 있어?”

생각해 보면 나도 앞의 몇 장을 읽고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들 앞다투어 자기도 그렇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공범자들처럼 웃는다. 휴가지에서의 책은 읽어도 좋고 안 읽어도 좋은 것 같다. 우리가 고심해서 고르고 가방의 생필품 사이에 넣은 책은 숙제가 아니라 쉼이니까 말이다.

우리가 꿈꾸는 휴가가 모두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확산세인 코로나로 여행은 더 힘들어졌다. 성수기의 항공권 값은 더 비싸졌고 구하기도 어렵다. 그럴 땐 하루를 잘 마치고 방구석 휴가를 떠나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와 한 권의 책을 들고 에어컨 아래에서 늘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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