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동양평화론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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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에서 초대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해다. 뤼순 감옥에 수감된 안 의사는 당연하게도 사형을 언도받는다. 그는 재판부에 이렇게 요구했다. “내가 지금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고 있소. 항소하지 않을 터이니 말미를 주시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안 의사는 사형 선고 40여 일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지금으로부터 112년 전의 일이다.

완성되지 못한 채 서문과 초반 일부만 남겨진 ‘동양평화론’은 1979년 9월 일본 국회도서관 자료실에서 발견됐다. 그 대략적 구상은 이렇다. △한·중·일 3국 협력 기구 설치 △3국 공동은행 설립과 공용화폐 사용 △3국 연합군 창설 △한·중·일 경제 개발 협력 △로마 교황 중재 아래 3국의 평화적 관계 설정. 물론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과 세계 제패를 꿈꾼 일본의 야욕을 무시한 비현실적 주장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경제 공동체와 국제기구 창설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다자 협력체제를 구상한 것은 선진적인 발상임이 분명하다.

그는 평화를 위해 고민했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평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정당한지 또한 고민했다. 분명한 행동가였으나 속 깊은 사상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한·중·일 3국이 동등하게 협력하자는 생각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미완으로 끝난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제국주의 시대 약소 민족의 보편적 염원이 담긴 동양평화론은 10년 뒤 ‘기미독립선언서’의 토대가 된다. 그의 사상 속 핵심 가치인 정의와 인도주의, 동포애는 현재 우리나라 제6공화국 헌법에까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최근 안중근 의사를 다룬 소설 〈하얼빈〉을 출간한 작가 김훈은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의 동양은 안중근 시대보다 더 돌파구가 안 보인다. 동양평화론은 현시대에 더욱 절박한 화두다.” 미국과 대등한 싸움을 벌이려는 중국, 잇단 핵무장에 나선 북한, 평화헌법을 고치려는 일본이 있는 지금의 동양 평화는 위기에 처했다. 이 시대는 편협한 민족주의보다 더 높은 비전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큰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상은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그건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지 않는 세계를 꿈꾼 데 있다. 협소한 자국 중심주의를 넘어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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