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재 가족' 위한 통합 서비스 서둘러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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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소모품’ 그릇된 인식 벗어나
부양·돌봄·간병·심리 상담 지원 시급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크레인 작업 중 숨진 노조 조합원이 산재 사망자 추모 장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제공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크레인 작업 중 숨진 노조 조합원이 산재 사망자 추모 장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제공

지난 1월 중대재해법을 시행한 이후에도 국내 산업 현장에서 여전히 크고 작은 재해와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으로 ‘산재 공화국’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산재 사고로 인한 가족 공동체의 붕괴 등 부수적인 피해도 심각한 실정이다. 〈부산일보〉의 ‘안전 일터 우리가 만듭니다’ 연중 기획 보도에 따르면 “산재로 인한 사회 경제적 손실이 연간 20조 원에 이르고, 피해 당사자 개인만이 아니라, 가정과 가족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사)희망씨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산재(사망) 노동자 가족생활 실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산재 가족들은 평생 경험하지 못했던 정신적·심리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경제력 상실에 따른 생활고와 함께 ‘산재 피해자 가족’, ‘불쌍한 존재’라는 주변의 낙인이 이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있다. 갑작스러운 가장의 사고로 자녀의 심리적 방황과 가족 공동체 해체 등 심각한 위기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실정이라고 한다. 산업 재해가 피해자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에게까지 고통이 전가되면서 사회적 재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산재의 또 다른 피해자인 가족이 겪는 ‘트라우마’에 대한 규정조차 명확하지 않은 실정이다.

산재 가족들은 한결같이 “산재 신청과 승인 과정이 너무나 힘들다”고 호소한다. 산재 신청 과정에서 회사 및 동료와 갈등을 겪으면서 무력감도 심각한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산재 승인 여부를 떠나 가족에게는 자책감과 상실감, 우울감 등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남겨 지속적인 상담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현행법은 유족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나 피해자에 대한 의료 지원에 집중할 뿐, 산재 가족을 보호하거나 지원하는 법체계는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로 인해 이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처방하고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기업과 국가의 노력과 함께 노동자의 피와 땀이 바탕이 되었다. 이제 ‘노동자는 소모품’이라는 그릇된 인식 아래 누군가의 성장을 위해 누군가가 희생을 감수하고, 그 피해자 가족이 고통을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 노동자의 안전과 가족의 행복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산재 가족의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자녀 돌봄과 가사·간병 지원, 가족 심리 치료, 법률 구조, 가족 부양 등 산재 가족에게 통합적인 지원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사회가 산업 재해와 그 가족의 트라우마에 대해 보다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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