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태풍의 눈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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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관련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삼국 시대에 나온다. 고구려 모본왕 2년(서기 49년) 3월에 폭풍으로 나무가 뽑혔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신라에서는 경주에 강풍이 불어 금성의 동문이 저절로 무너졌다고 전해진다. 고려 시대엔 정종 6년(950년) 폭우가 내리고 질풍(疾風·몹시 세고 빠르게 부는 바람)이 불어 개경의 궁성 동문인 광화문이 무너졌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물론 조선 시대로 내려올수록 관련 기록은 더 많아진다.

태풍의 한자는 클 태(太)자쯤으로 쉽게 짐작되지만 그렇지 않다. 태(颱)자를 쓴다. 1634년 중국에서 간행된 〈복건통지〉라는 책에서 태풍이라는 말이 처음 나왔다. 이전에는 강하게 회전하는 바람을 ‘구풍(具風)’이라 했다. 구풍은 조선의 여러 문헌에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颱風’이 처음 등장한 건 1904~1954년 기상관측 자료를 정리한 〈기상연보 50년〉에서다. 태풍의 어원은 다양하다. 영어 ‘타이푼(typhoon)’을 음역했다거나, 거꾸로 태풍의 중국 방언이 영어가 됐다거나 등등. 태풍은 동남아에서 주로 발생해 왔으므로 중화권에서 어원을 찾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태풍의 가장 특이한 현상은 태풍의 눈이다. 열대성 저기압 중심부에 나타나는 무풍지대, 곧 맑고 조용한 기상 상태를 가리킨다. 태풍 중심에 가까울수록 원심력이 강해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태풍의 눈의 지름은 30~50km 정도가 일반적인데, 100~200km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바닷새는 물론 수많은 철새 무리가 태풍의 눈에 머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폭풍도 없고 주변보다 따뜻해서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일주일 내내 수천km를 비행하면서 탈진을 감수해야 한다. 태풍의 눈이 피난처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덫이 되는 이유다. 그런데 일부 철새는 태풍의 경로와 시기를 예측해 이를 피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새들의 행태를 통해 태풍의 변화를 예견하는 연구도 가능하지 않을까.

역대급으로 전망되는 태풍 ‘힌남노’의 한반도 상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직접 영향권에 든 일본 오키나와는 이미 초토화돼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부산은 아직 구름이 두텁지 않고 비도 많지 않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이때 딱 들어맞는 표현이 ‘태풍의 눈’이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를 무시무시한 상황, 혹은 복잡하고 시끄러운 와중에도 그 영향력을 못 느끼는 무감한 상태. 고요한 ‘폭풍전야’도 같은 말이다. 이럴 때가 가장 위험하다.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경각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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