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적 훼손 막기 위해 발굴·수리 등 문화재 발굴 전문가가 참여해야”

백남경 기자 nkbac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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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곤 동서문물연구원 원장

김해 구산동 고인돌 훼손 사건
부족한 예산으로 졸속 추진 진단
“매장문화재 예산 전액 국비 지원해야”

김형곤 동서문물연구원 원장 김형곤 동서문물연구원 원장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다시는 귀중한 문화재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매장문화재 현장에서 40여 년 동안 발굴 활동을 해온 (재)동서문물연구원 김형곤(60) 원장. 그는 최근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고인돌)가 복원되는 과정에서 문화재가 훼손된 혐의로 문화재청으로부터 김해시가 고발당한 사건을 두고 이같이 대안을 제시했다.

김해 구산동 지석묘는 경남 합천, 창녕, 함안, 고성과 경북 고령 등지에 분포하는 고대 가야의 고인돌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상석 무게가 무려 350t에 달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로도 평가된다.

전문가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은 그는 “이 지석묘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이 있는 데다, 고대 가야 김해 토착민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유적이어서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면서 “2006년 1차 발굴 이후 문재인 정부 때 국정과제로 추가돼 시작된 가야유적지 복원 과정에서 묘역을 둘러싼 석축열과 부석들이 훼손됐는데, 부족한 예산 때문에 전문가에 의한 적법한 절차 없이 졸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빚어진 문제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 원장은 “일선 행정기관에서는 문화재의 지표 및 발굴조사는 전공자가 담당하지만 문화재의 관리 및 보수 정비 사업은 주로 토목직이 맡고 있는 실정인데, 이번 일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유적이 훼손되는 일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선 발굴, 수리, 보수, 보존, 복원, 정비 등 모든 과정에 문화재 발굴 전문가가 참여해야 하며 특히 책임공무원제와 책임감리제도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매장문화재는 국가가 소유하는 공공재인 만큼 원칙적으로 예산도 전액 국비 지원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매장문화재는 그 나름대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는 “역사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뿐만 아니라 신라 1000년, 고려 500년, 조선 500년의 역사 시대에 걸친 미기록된 선조들의 삶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비밀스러운 물적 자료가 바로 매장문화재이다”면서 "따라서 매장문화재는 우리 조상들이 남긴 그 자리에서 깨지면 깨진 상태로 보존·관리하는 것이 최상이며, 소설이나 수필과는 달리 미화하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매장문화재 발굴 전문가로서 보기 드물게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1981년 창원대학교 사학과 1학년 때 부산여대에서 진행한 창원여고 부지 발굴현장 참여를 계기로, 문화재 발굴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40년이 지났다. 이후 2005년 문화재 조사·연구기관인 동서문물연구원을 설립해 국내에서 200회 이상, 북한 개성과 몽골 등 외국에서 10회 이상 발굴 활동을 했다.

1985년 7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경주 황룡사지와 굴불사지 발굴에 참여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했다. 그는 “굴불사지에서 누런 황금색 금동불상이 출토된 광경 앞에서 하늘이 노래지면서 꿈인지, 생시인지를 모를 만큼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고 회상하고는 “아무리 오래돼도 금은 그대로의 모습이었고, 그게 바로 역사라는 걸 깊이 깨닫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이 보호·전승되도록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일조하고 싶다”고 식지 않은 열정을 밝히기도 했다.


백남경 기자 nkbac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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