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피노체트 군부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서 부결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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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구조 개혁 취지로 추진
최근 일부 조항 놓고 여론 분열
국민 61.9% 반대로 통과 못 해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국민투표에서 헌법 개정안이 부결된 후 수도 산티아고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정권(1973∼1990년) 시절인 1980년 제정된 현행 헌법을 완전히 뜯어고쳐 만든 개헌안은 이날 국민투표서 찬성 38%, 반대 61%로 부결됐다.연합뉴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국민투표에서 헌법 개정안이 부결된 후 수도 산티아고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정권(1973∼1990년) 시절인 1980년 제정된 현행 헌법을 완전히 뜯어고쳐 만든 개헌안은 이날 국민투표서 찬성 38%, 반대 61%로 부결됐다.연합뉴스

군부 독재 당시 제정된 헌법을 개정하려 했던 칠레 정부의 계획이 무산됐다.

칠레 선거관리국은 4일(현지시간)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결과 반대 61.9%, 찬성 38.1%(개표율 99.9%)로 개헌안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현행 칠레 헌법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정권(1973∼1990년) 시절인 지난 1980년 제정됐다. 이후 몇 차례 개정은 됐지만 근간은 유지됐다. 이후 2019년 10월 불평등한 경제·사회 구조를 바꾸자는 시위를 시작으로 개헌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2020년 개헌 절차 착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는 78%가 찬성하며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성비 균형을 맞추고 원주민도 포함한 제헌의회가 구성되면서 개헌 초안이 작성돼 정부에 제출됐다. 새 헌법에는 원주민 자결권 확대, 양성평등 의무화 등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11개 장 388개 조항으로 조항 수는 전 세계 헌법 중 가장 많은 수준이다.

그러나 개헌 취지와 달리 일부 조항이 충분한 여론 수렴없이 추진돼 국론은 분열됐다. ‘공기업 구성원 남녀 동수’, ‘난민 강제 추방 금지’, ‘자발적 임신중절 보장’ 등이 의견이 나뉜 대표 조항들로 알려졌다. 급기야는 투표를 수개월 앞두고 진행된 일련의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찬성을 웃돌았고, 그 여론 흐름이 실제 국민투표까지 이어져 온 셈이다.

개헌안 부결로 3월 취임한 가브리엘 보리치(36) 대통령의 국정 운영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개헌을 동력으로 사회 전반에 개혁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보리치 대통령의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리치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오늘 결정은 우리 정치인들이 더 많이 대화하고 하나로 단결할 수 있는 제안에 도달할 때까지 더 열심히 일하라는 요구”라면서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히 듣고, 왜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회, 시민사회와 함께 새로운 일정을 수립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며 개헌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한편 이번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 야당인 독립민주연합 하비에르 마카야 대표는 “상식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승훈 기자·일부연합뉴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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