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손질 최전선에서 가장 역할 하며 수십 년 버텼지예”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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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당신이 모르는 수산 아지매

부산공동어시장 부녀반
최고참 40년 경력 “분류는 우리 자부심”
오전 6시 퇴근한 뒤 낮엔 육아까지…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에서 선사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녀반이 갈치를 크기별로 분류하고 있다.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에서 선사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녀반이 갈치를 크기별로 분류하고 있다.

‘부산의 여성’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부산의 상징인 자갈치시장을 만든 자갈치 아지매, 조선산업 1번지 영도 대평동 일대 수리조선소의 깡깡이 아지매, 부산 신발산업의 전성기를 이끈 부산 여공. 하지만 이보다 이전부터 수산도시 부산에서 생선을 분류하고 손질하던 여성들이 있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산물이 생산되는 부산에서 이들의 노력 없이 식탁은 만들어질 수 없었다.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들은 부산 해녀처럼 특별한 생태적 가치를 지니거나, 원양 선원처럼 거친 바다와 싸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갓난아이를 업고 새벽부터 손질하고, 차디찬 공장에서 생선온도에 몸 온도를 맞추며 살아왔다. 각자의 자리에서 버텼고 수산가공 테크니션으로 거듭났다.

부산 서구 충무동. 오후 10시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취객들과 귀가를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목욕탕 의자’와 ‘막대기’를 들고 분주하게 한곳으로 모여드는 여성들이 보인다. 부산공동어시장(이하 어시장)에서 어획물 분류 작업을 하는 일명 ‘부녀반’이다. 1963년 어시장 설립 이후 60년 동안 자리를 지켜왔지만, 자동화 도입 등 현대화사업과 고령화 등으로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어획물 6만~7만 상자를 새벽시간 내 모두 수작업으로 분류한다. 고등어의 경우는 크기가 8단계로까지 나뉜다. 일반인의 눈에는 비슷해 보이는 크기도 부녀반의 손만 거치면 순식간에 8개 상자에 나눠 담긴다. 중간유통자인 ‘중도매인’이 판매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다.

7일 오후 10시께 찾은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에는 7000상자 정도 분량의 어획물이 들어왔다. 이날은 어획량이 많은 편이라 비교적 이른 시간인 오후 10시께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양이 적은 날에는 선도를 위해 새벽 1시까지 대기한다. 이날 부녀 2반 소속 부녀반 35명 정도가 나왔다. 그날 어획량을 보고 반장이 작업자 수를 정한다. 대략 이곳에서 일하는 부녀반은 500여 명 정도다.

경력 40년이 넘은 최고참 작업자도 있는 부녀반은 생선이 손에 스치기도 전에 단번에 크기를 분류한다. 전국으로 빠르게 유통하기 위해서는 선도를 유지하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성어기와 비성어기의 차이는 있지만 고등어의 경우 상자당 적게는 10만 원에서 40만 원까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전국 어획물 가격이 부녀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부녀 2반 소속의 한 작업자는 “손에 잡고 0.5초면 크기가 대략 나온다”고 말했다. 고등어도 다 같은 고등어가 아니다. 참고등어, 기름고등어, 노란고등어를 순식간에 나누고 고등어별로 다시 크기를 나눈다”며 “부녀반이 제대로 크기를 분류해야 선사들이 제 가격에 고기를 팔 수 있고 그래야만 전국에 제대로 유통된다”고 귀띔했다.

선사 직원과 부녀반의 기 싸움에서도 직업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선사는 잡아 온 고기가 크게 분류되기를 바라지만, 부녀반은 이들의 간섭에도 아랑곳없이 크기를 분류하면서 언쟁이 일기도 한다. 한 부녀반 작업자는 “분류는 우리의 자부심이다. 선사 직원들이 뒤에서 감시하면서 크기에 대한 간섭을 하지만 여기서 지면 어가가 다르게 책정되기 때문에 집중해서 작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녀 2반 반장인 50대 A 씨는 이곳에서 일한 지 20년이 넘었다. A 씨는 부녀반 일 때문에 20대 때부터 단 하루도 새벽에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어획량에 따라 그날그날 출근시간이 달라지는 탓에 샤워할 때도 휴대폰을 들고 들어간다. 이곳의 여성 대부분은 수십 년간 오후 10시에 출근에 새벽 6시에야 집에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해 왔다.

한 부녀반 직원은 갓난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아이를 고무대야에 넣어 오기도 했다. 그는 “엄마니까 하지 다른 일을 못한다”며 “이곳 여성들이 부녀반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건 새벽에는 일하고, 낮에는 육아를 할 수 있어서다”고 말했다.

그들은 퇴근길에서 생선 비린내가 난다며 대중교통과 택시 승차거부를 당하기도 일쑤다. 한 부녀반 직원은 “많은 사람이 바닥 경매 등의 비위생적인 이유로 비난하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가장으로서 수십 년을 버텼고 자식을 대학에도 다 보냈다”며 “한번은 버스를 탔는데, 비린내 때문에 사람들이 자리를 옮겼을 때는 서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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