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리마보다 활기찬 하엔… 스페셜티 커피가 불러온 변화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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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커피도시 부산] (1) 잠재력 큰 페루 스페셜티 커피

페루 3대 커피 생산지인 카흐마르카 지방에 있는 라 팔레스티나 농장에서 호세 알라르콘 씨가 수확 후 가공한 커피 열매를 건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라 팔레스티나 농장은 스페셜티 커피를 재배하고 나서 수익이 대폭 상승했다. 페루 3대 커피 생산지인 카흐마르카 지방에 있는 라 팔레스티나 농장에서 호세 알라르콘 씨가 수확 후 가공한 커피 열매를 건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라 팔레스티나 농장은 스페셜티 커피를 재배하고 나서 수익이 대폭 상승했다.

부산에서 마시는 페루 스페셜티 커피 한 잔은 어떤 의미일까. 페루 스페셜티 커피 한 잔이 페루 커피 생산자와 가족의 삶을 바꾼다. 페루 생산자의 더 나은 삶이 더 좋은 커피를 만들고, 이 커피가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다. 이 질 좋은 커피는 부산이 커피도시로 성장하는 토양이 된다.

페루는 2020년 기준 전 세계 10위의 커피 생산 대국이다. 중남미에서는 브라질, 콜롬비아, 온두라스, 멕시코에 이어 5번째 생산량을 자랑한다.

최근까지 페루 커피는 많은 생산량을 바탕으로 인스턴트 커피 등으로 활용되는 커머셜 커피(시판용 커피)로 대부분 팔려나갔다. 품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다 보니 페루 커피는 ‘결점두’(결점이 많은 생두)가 많다는 불명예가 씌워져 있었다. 하지만 세계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성장하고, 스페셜티 커피 재배에 적합한 페루의 자연 환경이 결합하면서 ‘페루 커피가 달라졌다’는 세계 시장의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생산량에 집착하다 ‘결점 커피’ 불명예

커피대회 계기 수익성 높은 커피 눈떠

소농 모여 조합 꾸리고 소비국 직거래

지방도시 하엔, 커피 생산 중심지 부상


■페루 커피 3대 생산지 가 보니

지난달 22일 페루의 3대 커피 생산지로 꼽히는 카하마르카 지방의 거점 도시 하엔은 수도인 리마보다 더 활기가 넘쳤다. 하엔은 커피 생두를 담은 60kg들이 검은 백을 가득 실은 커피 트럭을 흔히 볼 수 있는, 그야말로 페루의 대표적인 커피 생산도시였다.

현지 커피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하엔이 수도보다 활기를 띠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커머셜 커피보다 수익성이 높은 스페셜티 커피 재배가 늘어난 점과, 커피와 마찬가지로 고도가 높은 산 속에서 잘 자라는 마약의 원료가 되는 코카잎의 불법 재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엔의 생두 수출업체 오리진 커피랩의 호세 리베라(36) 대표는 “카하마르카 지방에서 스페셜티 커피 재배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하엔이 커피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며 “하엔에 회사를 세울 결심을 한 2017년과 비교하면, 도시가 크게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페루는 ‘커피 벨트’라고 불리는 커피 생산에 최적인 적도 인근에 자리 잡은 국가다. 커피 생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는 고도다. 페루 스페셜티 커피 재배지의 고도는 약 1400~2100m로 스페셜티 커피 재배에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스페셜티 커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중미의 파나마, 남미의 콜롬비아 등과 비교했을 때 페루는 후발 주자지만 스페셜티 커피업계에서 잠재력을 높게 평가받는 이유다.

■COE가 불러온 바람

여전히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커피 소비국에서 페루는 낯선 존재다. 2017년 페루는 전 세계에 스페셜티 커피 생산국으로서 강력하게 각인되는 계기가 있었다. 바로 2017년 페루에서 처음 열린 COE(컵 오브 엑설런스) 대회다.

COE는 1999년 높은 품질의 커피를 생산한 농부에게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돌려주자는 취지로 시작된 커피 경진대회다. 비영리단체가 주최하는 COE는 이후 커피 생산국별로 개최되며 그해 그 나라 최고의 커피를 가리는 대회로 성장했다.

스페셜티 커피로는 변방이었던 페루는 전 세계에서 온 커피 심사관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처음 열린 대회치고는 기대했던 것보다 수준 높은 커피가 많았다.

라 플로르 농장의 후안 에레디아 산체스(37) 씨는 2017년 92.25점의 높은 점수로 COE에서 우승하며 큰 변화를 맞이했다. COE는 결과가 나온 후 경매로 연계되는데, 산체스 씨의 커피는 파운드당 약 100달러에 거래됐다. 총 거래 가격은 약 7만 달러로, 이는 COE 2위를 차지한 커피의 2배에 달했다.

산체스 씨는 “COE를 통해 내가 키우는 커피의 가치를 알게 됐다”면서 “대회 이후 농장을 추가로 매입해 지금은 총 8ha(8만㎡)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고 가치가 높은 게이샤종 커피를 더 많이 심고, 커피 열매 발효 시간을 17시간으로 늘리는 등 더 좋은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합 꾸린 소농, 커피서 희망을

세계 1위 커피 생산량을 자랑하는 브라질은 1인당 재배 면적이 많은 대규모 농작을 자랑한다. 하지만 페루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남미 커피 재배 국가의 1인당 재배 면적이 평균 1~3ha(1만~3만㎡)에 불과한 실정이다. 재배 면적이 적으면 커피 생산량도 적을 수밖에 없어서 웬만한 수준의 커피를 생산하지 못하는 이상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소농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비슷한 지역에 위치한 소농이 조합을 꾸려 공동으로 재배 방법을 연구·적용하고, 때로는 정부와 협상해 자금을 확보하고, 시설을 확충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비영리 커피조합 ‘알프스 안디노’를 조직한 창립자인 에릭 하라(32) 씨는 “하엔에서 약 2시간가량 떨어진 라 코이파 지역 소농 25명이 조합을 함께 만들자고 요청한 것을 계기로 조합을 꾸렸다”면서 “조합은 함께 고품질의 커피를 생산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커피 소비국과 직거래를 통해 더 나은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협상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페루 하엔/글·사진=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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