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84. 모더니즘에 만들어 낸 작은 균열, 김용익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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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1947~)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김용익은 가천대학교 서양화과 교수, 대안공간 풀의 창립 멤버이자 문화관광부 산하 공공미술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모더니즘에서 민중미술, 공공미술까지 다양하게 작업했다. 미술계 안에서 여러 활동과 글쓰기를 통해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실존에 대해 사유하고, 2011년 발간한 자신의 단행본 제목처럼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를 질문하며 작업 중이다.

김용익은 1970년대 중반 광목천 위에 에어브러시로 가짜 주름 자국을 만들어 입체처럼 보이게 하는 작업인 ‘평면 오브제’ 연작을 제작했다. 2차원의 평면과 3차원의 공간에 대한 개념을 재기 발랄하게 풀어낸 이 작품으로 그는 ‘모더니즘의 기수’로 떠올랐다. 이후 ‘앙데팡당’전, ‘에꼴드서울’전 등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사의 중요 전시에 초대받았으며 197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과 군부정권의 탄압 등 한국 사회의 격변기를 목격하면서 김용익은 사회와 동떨어져 미학적 실험을 지속하는 모더니즘에 회의를 느끼게 됐다. 작가는 1981년 ‘제1회 청년작가전’에서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평면 오브제’들을 박스 안에 넣는 작품을 선보이며 모더니즘과의 결별을 고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하게 된다.

소개하는 작품 ‘무제’는 1990년대부터 김용익이 제작한 ‘땡땡이 회화’ 연작 중 하나. 캔버스 위에 동그란 원 모양의 땡땡이를 배열해 일견 미니멀리즘 회화 또는 단순한 패턴의 나열로 보이기도 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흰색의 원 아래 바탕에 희미하게 적어 놓은 메모와 거친 붓 자국, 그리고 균일하게 채색되지 않은 얼룩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모더니즘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인식하고 모더니스트로서의 자기 부정을 시도했던 김용익은 이 작품에서 모더니즘 회화의 자기 폐쇄성을 전복시키는 방식으로 모더니즘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최지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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