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76. 여왕을 화장하진 않았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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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우리는 모두 자기가 하는 말이 꽤 정확하다고, 틀린 말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런 생각처럼 허망한 게 없다. 일상에서, 특히 언론이 얼마나 엉터리 말을 쓰는지 보자.

〈여왕을 참배하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유해 일반에 공개된다〉

〈英 여왕 유해 에든버러 도착...윈스턴 처칠 이후 57년만의 유해 공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세상을 떠난 뒤 나온 기사 제목들이다. 한데, 저 ‘유해’가 바로 말도 안 되는 말인 것.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유해(遺骸): 주검을 태우고 남은 뼈. 또는 무덤 속에서 나온 뼈.=유골.(유해를 모시어 안장시키다./유해를 안치하다….)

즉, 유해는 화장한 뒤에 남은 뼈, 혹은 파묘해서 나온 뼈를 가리키는 것.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추도예배 뒤 관에 담긴 ‘시신’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단어 하나 때문에 사실과 다른 엉터리 보도가 된 셈이다.

〈‘스타트렉’ 우후라역 니셸 니콜스 유골, 우주에 뿌려진다〉

여기 나온 ‘유골’도 엉터리인데, ‘유해’ 뜻풀이에 나와 있듯이 ‘유골=유해’인 것. 뿌린다고 했으니 저 ‘유골’은 ‘뼛가루(골분)’일 터.(그러고 보면 우리 언론은 뼈(유골, 유해)를 시신으로 만들었다가 뼛가루로 만들었다가 하는 신기한 능력이 있는 셈.) 한편, 시신을 태우지 않고 자연 상태에서 살이 썩어서 남은 뼈는 ‘해골’이라고 한다. 머리뼈만 해골인 것은 아니다. 표준사전을 보자.

*해골(骸骨): ①죽은 사람의 살이 썩고 남은 앙상한 뼈.(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뼈에 묻은 흙을 닦은 다음 그 해골을 정성스럽게 싸안았다.) ②살이 전부 썩은 죽은 사람의 머리뼈.(동굴 속에선 해골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들판에 쌓여 있는 해골은 전쟁의 참상을 말해 준다.) ③생각하는 머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마포·영등포 등 서울 도심에 공공재개발 ‘1만가구’ 공급한다〉라는 기사 제목에도 엉터리 말이 있다. 틀린 말은 ‘도심’인데, 표준사전을 보자.

*도심(都心): 도시의 중심부. 대도시의 경우에는 관공서·회사·은행·사무소 따위가 모여 있고 정치적·경제적 기능의 중심이 되어 가장 번창한 곳을 이른다.(도심 지대./도심 공동화 현상….)

즉, 도심은 도시에서 ‘가장 번창한 곳’이니 당연히 한 곳뿐이다. 그러니 ‘마포·영등포 등 서울 도심’은 말이 되지 않는 말인 것. 통상 서울 도심은 광화문 일대를 가리키므로 영등포, 청량리, 강남, 신촌 따위 다른 번창한 곳은 ‘부도심’에 해당한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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