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천남성(天南星)/정연홍(1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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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성 옆 작은 성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처럼 이쁜 마을일 거라 상상했다 그를 보고 두 번 놀랐다 작고 치명적인 꽃이었다 그가 꺾어 준 열매는 핏물이 번지는 산삼 꽃이었다 극양(極陽)이었다

(중략)

그럴 때마다 천남성이 내게로 왔다 첫 남성이었다 절망적인 극약으로 위장한 당신 나는 소량의 싸이나를 먹으며 매일 조금씩 죽어 가고 있었다 뿌리는 호랑이 발바닥이었다 우린 발바닥만 믿는 족속들이다

잎이 지면 알게 된다 뿌리를 뽑아 보면 호랑이가 나왔다 내동댕이쳐도 죽지 않았다 첫 남성은 치명적이게도 세월이 흐를수록 또렷해졌다 화가 오키프는 꽃만 그리다가 꽃처럼 시들었다

- 시집 〈코르크 왕국〉(2020) 중에서


천남성은 외떡잎식물로 한국의 숲 곳곳에서 흔히 자란다. 꽃은 5~7월에 피고 이즈음에 열매를 맺기 시작해 10월에 붉은색의 열매가 옥수수처럼 열린다. 시인에 의하면 장희빈이 받았다는 사약이 천남성이라니, 그 독성은 부연하지 않아도 알겠다. 이 독성의 식물을 시인은 ‘절망적인 극약으로 위장한 첫 남성’으로 발견하고 있다. 천남성/첫 남성은 ‘뿌리를 뽑아보면 호랑이가 나왔다 내동댕이쳐도 죽지 않았다’처럼 끊임없이 화자를 괴롭혀 온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미국의 사막과 꽃의 화가 오키프처럼 꽃만 그리다가 꽃처럼 시든 예술가의 운명 같은 것을 제시한다. 시 쓰기도 마찬가지. 독성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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