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85) 숭고한 추상의 세계, 김환기 ‘십자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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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1913~1974)는 한국적 정취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도 세계인이 공감하는 조형미와 색감을 지닌 작품 세계를 가졌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를 감동과 명상의 세계로 이끈다. 작가는 한국 전통미를 현대화한 세련된 화면 구성으로 민족 정서와 자연을 추구한 ‘조형 시’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환기는 1930년부터 가장 전위적인 활동의 하나였던 추상미술을 시도하고 한국의 모더니즘을 이끌었다. 1950년대에 이르러 산·강·달 등 자연을 주 소재로, 밀도 높고 풍요로운 표현으로 한국적 정서를 아름답게 조형화했다.

작가는 파리 시대(1956~1959년)와 아울러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수상한 1963년부터 1974년에 이르는 뉴욕 시대에 더 왕성한 작품 활동을 선보였다. 파리 시대와 서울 시대를 포함한 1950년대까지 그의 예술은 엄격하고 절제된 조형성 속에 한국의 고유한 서정 세계를 구현했다. 1960년대 후반 뉴욕 시대에는 점·선·면 등 순수한 조형적 요소로, 보다 보편적이고 내밀한 서정의 세계를 심화시켰다. 작가는 ‘전면 점화’라고 불리는 명상적이고 시적인 공간으로 숭고한 추상의 세계를 남겼다.

작품 ‘십자구도’는 1969년 작으로, 미세한 다색의 작은 네모꼴 필점이 화면에 등장한다. 이 시기에 작가는 서정성이 강하고 물감의 번짐 효과가 주는 울림에 주목하면서 화면 중앙이 사분되는 ‘십자구도’라는 일련의 작품을 제작한다. 바람개비가 도는 듯한 이 작품들은 청색과 붉은색, 노란색이 주조를 이루어 강한 대비 효과를 보인다.

굵은 외곽선 안을 색채로 채워 면과 선의 조응 관계에 주목한 작품으로, 원형을 그으면서 반복되는 형상이 주는 깊이감과 영원성을 구조화시킨 작품이다. 수직과 수평이라는 기하학적이고 추상적 도상에 접근하여 청색과 황색을 작열시키고, 선적 정지성과 색채의 유동성이 결합되어 선화하는 리듬과 우주적인 것에 대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우경화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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