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77>친일 사전?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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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외상(外相): 일부 나라에서, 외무성의 우두머리를 이르는 말.

*외무성(外務省): 일본의 중앙 행정 기관인 성(省)의 하나. 외교 정책, 통상 항해, 경제 협력, 조약 체결 따위의 대외 행정 사무를 맡아본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에 실린 이 두 올림말(표제어)을 보자면 묘한 기분이 든다. ‘일부 나라 외무성’의 우두머리를 외상이라고 한다지만, 정작 중앙 행정 기관인 ‘외무성’이 있는 나라는 일본뿐이란다. ‘일부’가 ‘단 하나’라는 뜻이었나.

*대장성(大藏省): 일본의 행정 기관의 하나. 재정, 통화, 금융에 관한 일을 관장한다.

게다가, 일본 국가행정조직인 성·청 가운데 유독 저 ‘외무성, 대장성’만 표준사전에 실은 까닭은 무엇일까. 궁금한 것은 또 있다.

*국방상(國防相): 영국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 국방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행정 부서의 장관.

1999년 처음 찍어 낸 종이 표준사전 뜻풀이인데, 일본에는 있지도 않는 국방상을 저렇게 있다고 실은 이유는 무엇일까. 국방성이 없는 일본에 그 우두머리인 국방상이 있을 리가 없는데….(그나마, 나중에 웹 표준사전에서 ‘일본’을 삭제한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이렇게 일본 쪽에 기운 모습을 보이는 우리 국어사전은 표준사전뿐만이 아니다. 여러 사전이 우리가 전혀 쓰지도 않는 일본식 한자어를 지나치다 싶게 많이 실어 놓은 것. 하지만,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사전이 이러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국립’이나 ‘표준’이라는 말이 지니는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말.

*내풍인촌(耐風燐寸): 단단한 곳이면 아무 데나 그어도 불이 일어나도록 만든 성냥. =딱성냥.

한국말 쓰는 사람 가운데 과연 써 본 이가 몇이나 될까 싶은 이런 말을 올림말로 실었는데, 여기서도 일본 냄새가 솔솔 나는 것. 먼저, 우리 사전에는 내풍(耐風)이라는 말도, 인촌(燐寸)이라는 말도 없다. 그런데 일본말로 ‘耐風’은 강한 바람을 견뎌 내는 일이라는 뜻이고, ‘燐寸’은 성냥이다. 그것 참….

한데, 정작 표준사전보다 더 일찍 나온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민중서림)에는 이렇게 돼 있다.

*내풍인촌(耐風燐寸): ‘딱성냥’을 전에 일컫던 말.

그러니,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이라는 얘기다. 또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어문각)에는 이렇게 나온다.

*내풍인촌: →딱성냥.

‘내풍인촌’은 비표준어이니 ‘딱성냥’으로 쓰라는 뜻. 이러니 표준사전은, 일본물을 좀 더 씻어 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립’ ‘국어원’에서 펴낸 ‘표준’ ‘국어’ ‘사전’이니까 말이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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