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외교 참사” 여 “속셈 뭐냐”… 판 커지는 ‘조문 취소’ 공방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영 여왕 장례식 조문 취소 최대 쟁점 부상
국힘 “문 전 대통령 중국 방문 ‘혼밥’” 반격
민주 “홍보수석 해명마저 거짓” 재차 공격
각종 해프닝 속 참사 규정 타당하냐 지적
대통령실-외교라인 미숙함 우려 여론도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시내 한 연회장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시내 한 연회장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조문 취소’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이 21일에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의 ‘외교 참사’ 주장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혼밥’ 논란을 꺼내들며 반격했다. 이번 주 대정부질문과 함께 본격화된 정기국회 초반의 최대 쟁점이 조문 문제가 된 셈인데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는 여론의 부정적인 시각도 커진다.


국민의힘은 조문 문제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이날 관련 대응을 강화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영국 왕실은 깊은 상심에 빠져있음에도 불구하고, 핵심 우방국인 한국에 최상의 예우를 제공했다”며 “민주당은 더 이상 우방국 영국의 아픔을 국내 정쟁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양금희 원내대변인은 BBS 라디오에 출연 “2017년 12월에 문재인 대통령께서 중국을 방문하셨을 때 중국 관계자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외교 활동을 펼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혼식을 하셨다”며 “그게 정말 외교 참사”라고 받아쳤다.

조해진 의원도 페이스북에 “당사국에서 조문했다고 말하는데 우리 야당은 조문 안 했다고 어거지 생떼를 부리는 것은 무슨 속셈인가”라며 “이 어려운 시기에 장례식 끝난 남의 나라 조문 논쟁에 골몰하며 금쪽 같은 시간을 허비하는 걸 보면 야당의 민생 타령은 입에 발린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는 전날 한 방송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새 국왕을 만났고 국장에 참석하셨다. 그걸 조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야당의 ‘조문 참사’ 주장을 일축했다.

반면 민주당은 조문 취소 논란을 ‘외교 참사’로 재차 규정하면서 현지에서의 윤 대통령의 행적이 묘연하다며 ‘런던 실종 사건’이라고까지 명명하며 공세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조문 취소에 대한 대통령실의 해명에 대해 “처음에는 교통상황 때문이라고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해명만 늘어갔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대통령실, 총리, 외교부는 엇박자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급기야 어제 대정부질문에서는 김은혜 홍보수석의 해명마저 거짓으로 드러났다”며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늦어 참배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주요국 정상의 조문 참석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세계 100여 개국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세기의 장례식이고, 정상들의 크고 작은 해프닝이 연이어 일어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일을 ‘참사’로까지 규정하며 정부 비판에 열을 올리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례로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장례식에 다소 늦게 도착해 식장에 바로 입장하지 못하고 한동안 입구에서 대기하는 모습이 잡혔고,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검정 선글라스와 운동화를 착용하고 웨스트민스터홀로 조문을 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자국에선 일종의 해프닝 정도로 처리하고 마는 분위기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장례식 이틀 전 투숙 중이던 호텔에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부른 장면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논란에 휩싸였지만, 캐나다 야당 의원은 “노래를 불렀다고 문제 삼을 생각은 없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더 나은 노래를 고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점잖게 고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이번 조문 취소 논란에서 드러난 대통령실과 외교 라인의 미숙함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의힘 김근식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른 정상들이 했던 직접 참배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생각이 있다”며 “외교부 등 정상외교를 준비한 측에서 좀 더 세심한 주의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통령 부재 시 국정을 총괄하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전날 대정부질문에서 윤 대통령의 영국 도착 시점이나 외교부 장관의 동행 여부에 대해 숙지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 데 대해서는 여당 내에서도 “외교를 비롯해 국정 전반이 느슨하게 돌아가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