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외에 있는 자국 미술품은 미(美)의 홍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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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츠요시 주부산일본국 총영사

도쿄에 있는 우리 집 베란다에는 작은 돛단배 한 척이 놓여 있다. 손바닥 크기만 한 돌을 돛에다 매단 이 배는 항상 북서쪽을 향하고 있다. “언젠가 북서풍을 타고 부산으로 다시 돌아오라”며 7년 전 내가 부산을 떠날 때 어떤 분이 주신 것이다. 당시 부산시립미술관장으로 계시던 분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일본 나가사키현립미술관과 우호적인 협력관계에 있다. 그 교류는 2008년 양 미술관 관장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서로 무리가 없는 방식으로 장기적인 교류 실현을 목표로 했었는데, 점차 학술·교육 보급을 비롯해 시설 관리, 양 미술관 소장품 교류, 학예사 교류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2009년부터는 매년 ‘내일을 개척하는 한·일 합동 어린이 미술교류전’을 개최하는 등 한·일 양국의 차세대 교육에까지 폭을 넓혔다. 2011년에는 두 미술관의 지속적인 교류와 미술관 사업 전반에 걸친 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양 미술관 교류에 관한 협정서’가 체결됐다. 부산시립미술관 지하 1층에 있는 어린이갤러리는 구체적인 성과 중 하나다. 개인 간 만남에서 시작된 교류가 두 지역 미술관의 시설과 소장품의 효과적인 활용, 나아가 한·일 차세대 교육으로까지 발전된 좋은 사례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상 해외 여러 도시에 있는 미술관을 방문할 기회가 많다. 내가 과거에 근무했던 미국 시애틀과 호놀룰루에는 시애틀 미술관과 호놀룰루 미술관과 같은 그 도시를 대표하는 미술관이 있었다. 시애틀 미술관은 미술관 입구에 있는 거인이 망치질하는 모습의 조각작품 해머링 맨(Hammering Man)으로 유명하다. 시애틀에 주재했을 때는 이 미술관을 바라보고 있는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매일 창문 너머로 해머링 맨의 큰 얼굴이 보였다. 비슷한 조각은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빌딩 앞에도 있다.

당시 시애틀 미술관에서는 대규모 전시가 있을 때면 그 전날에 사전 이벤트로 리셉션, 전시품 소개, 나이트 투어 등의 행사가 열렸다. 샴페인을 손에 들고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며 천천히 작품을 둘러본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는데, 이런 행사는 지역 기업의 후원으로 이루어진다. 시애틀은 보잉,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세계 굴지의 글로벌기업의 본거지며, 지역 문화와 예술, 복지에 대해 기업들의 깊은 이해와 더불어 지원 또한 두텁다. 한 도시의 문화는 바로 그 도시의 얼굴이며, 시민과 기업의 자랑이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었다.

해외 미술관을 방문해 가장 가슴 뿌듯할 때는 자국 미술품이 그곳에서 소중히 보관되고 유용하게 활용되는 모습을 볼 때다. 유명 미술관에는 대개 일본실이나 일본 관련 컬렉션을 명명한 전시실이 따로 있고 소장품의 보존과 복원뿐만 아니라 작품을 공개하고 해외 분들도 잘 알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까지 붙어 있다. 작품 소장까지의 과정을 보고 감사한 마음이 샘솟을 때도 많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흩어져 사라질 뻔한 위기를 헤쳐 나온 작품도 많기 때문이다.

부산시립미술관에도 훌륭한 일본 미술 컬렉션이 있다. 신옥진 선생이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한 미술품들이다. 부산 출신인 그는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후에 부산에서 화랑을 운영했는데, 경매로 구입한 작품 400여 점을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그가 기증한 작품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근·현대미술전’이 4회에 걸쳐 개최된 적이 있다. 마지막 전시 때는 전시 기간을 연장할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 요코야마 다이칸의 수묵화, 후지카와 유조의 조각 작품을 보았을 때는, 작품 가치는 물론, 신옥진 선생의 남다른 안목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미술품은 일반에게 공개돼 널리 알려짐으로써 인류가 공유하는 문화유산이 된다. 그렇기에 널리 알려질수록 더욱 좋다. 다행히도 그 가치를 아는 이를 만나 작품이 소중히 보존돼 오늘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한다.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우키요에를 그렸던 저명한 화가 우타마로, 샤라쿠, 호쿠사이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를 공개하고 있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흐를 사로잡았듯 지금도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해외에 있는 자국의 미술품은 먼 이국땅에 있지만 사람들에게 그 나라의 미의식, 사상, 역사를 전해 주는 미(美)의 홍보대사 역할을 한다.

감사하게도 부산에 다시 부임할 기회를 얻었다. 옛 친구와의 재회도 물론 기대가 되지만, 친숙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기다려지는 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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