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한글의 미래는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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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한글의 달이다.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달이요, 1929년 조선어학회가 결성된 달이며, 1933년 최초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공표된 달이다. 1942년 일제가 조작한 조선어학회 사건도 10월에 일어났다. 좋건 나쁘건 역사적 사건들이 몰린 한글의 달 10월이다. 9일로 정해진 한글날은 정인지가 쓴 〈훈민정음〉 해례본(1940년 발견)을 근거로 한다. 어제가 훈민정음 반포 576돌 한글날이었다.

오늘날 한글은 그 이름처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2009년 처음 열린 세계문자올림픽에서, 그리고 2012년 2차 올림픽에서도 한글은 부동의 1위였다. 세계의 석학들도 한글을 합리성과 과학성, 독창성 면에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중 하나로 평가한다. 나아가 한글은 정보화 시대에 가장 적합한 문자로 평가받는다. 전 세계에서 한글을 배우려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고 소수민족들이 그들의 문자로 한글을 채택하는 이유다.

하지만 나라 안팎의 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한글은 해외로 뻗어 가고 있는데 정작 이 땅에서는 외국어나 한자어에 오염돼 중병을 앓고 있어서다. 거리에도 공공장소에도 심지어 공문서에도 잘못된 표기와 어법이 난무한다. 인터넷이나 SNS에서는 한글 홀대를 넘어 문자 훼손이 두드러진다. 암호에 가까운 극단적 언어 파괴, 국적 불명 축약어들의 난장판이다.

문제는 국어 문법이 이를 해소하기는커녕 혼란만 부추긴다는 데 있다. 지금의 한글 맞춤법과 표기법은 너무 어렵고 국민 언어생활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얼마 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인기 영화배우 양조위가 단적인 사례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중국 인명의 경우 중국 근대 이전의 인물은 한자어로, 이후 인물은 현지 발음대로 표기하도록 한다. 이에 따르면 양조위가 아니라 ‘량차오웨이’가 된다. 누구를 위한 표기법인지 모를 일이다. 이런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지금은 국가가 언어의 권위를 내세우는 시대가 아니다. ‘표준어’를 비롯한 언어의 통일성이 요구되는 근대는 이미 지나갔다. 민주화 시대에 통제와 억압이 가능한 일인가. 국어 문법 체계를 현실에 맞게 바꾸고 언어의 다양성을 회복하는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올해는 세종대왕 탄신 600주년이다. 한글 만든 그 뜻을 제대로 새겨야 한다.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것이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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