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대호와 3000안타, 그리고 가을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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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용 스포츠부장

KBO 출신 최초 3000안타에 105개 모자라
1년 만 더 뛰면 가능하나 미련없이 은퇴 결단
롯데서 17시즌, 한국시리즈 무경험 더 아쉬워
은퇴식서 “과감한 투자” 요청, 구단 응답할 때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가 마침내 배트를 내려 놓았다. 22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식에서 그가 스스로 밝혔듯 “이제 배트와 글러브 대신 맥주와 치킨을 들고 타석을 떠나 관중석으로 옮겨” 롯데 자이언츠 팬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다.

그라운드를 떠났지만 이대호가 세운 기록들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큰 족적으로 남는다. 2006년과 2010년 달성한 두 번의 타격 3관왕(타율·타점·홈런 1위), 2010년 타격 7관왕(타율·타점·홈런·안타·득점·출루율·장타율 1위)은 KBO리그에선 전인미답의 대기록이다. 2010년 작성한 9경기 연속 홈런은 한·미·일 프로야구 통틀어서도 유일한 세계기록이다. 그해 때려낸 홈런 44개는 지금도 롯데의 한 시즌 개인 최다 홈런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대호의 KBO리그 통산 성적은 타율 0.309에 2199안타 374홈런 1425타점이다. 이는 일본(2012~2015년)과 미국(2016년)에서 활약한 5년을 뺀 17시즌 기록이다. 미·일 프로야구 성적을 더한 통산 기록은 2895안타 486홈런 1822타점에 이른다. ‘꿈의 3000안타’에 105개가 모자라고, 500홈런엔 14개가 부족하다.

3000안타는 KBO 출신 선수 중에선 아직 한 명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일본프로야구에선 재일교포 장훈(3085안타)이 유일하고, 100년 역사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4256안타의 피트 로즈를 비롯해 32명 만이 도달했다.

프로야구에선 각 리그별로 구분해 기록을 공인한다. 다른 나라 리그에서 남긴 성적을 합산하지 않지만, 이대호가 뛴 일본·미국 프로야구는 한국보다 수준이 높은 리그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록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일본인 ‘야구 스타’ 스즈키 이치로도 일본(1278개)과 미국(3089개)에서 통산 4367개의 안타를 남겨, 일본에선 세계 최고 기록으로 높이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이대호가 3000안타를 눈앞에 두고 은퇴하는 게 너무나 아쉽다. 은퇴 시즌인 올 시즌 만 40세의 나이에 타율 0.331 23홈런 101타점이란 놀라운 성적을 남겼기에 아쉬움은 더욱 진하다. 1년만 더 현역으로 뛴다면 안타 105개는 충분히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500홈런 달성도 가능할 수 있었다.

이승엽 SBS 해설위원은 이대호의 은퇴를 두고 언론 인터뷰에서 “이대호의 성적이 너무 좋다. 사실 1년만 더 뛰면 우리나라 선수로는 최초로 3000안타를 기록할 수 있지 않나”며 “한 번도 그런 선수가 없었는데 아쉽다”고 전했다.

3000안타는 산술적으로 20년 동안 매년 안타 150개를 꾸준히 때려야 달성할 수 있다. 그만큼 부상이나 큰 슬럼프 없이 꾸준히 기량을 유지해야 가능한 기록이다. 이승엽 위원의 말처럼 ‘이대호의 은퇴로 당분간 3000안타를 칠 선수가 없기’ 때문에 더 아쉽고 아까운 것이다.

하지만 이대호 자신은 개인 기록보다 팀 성적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큰 듯하다. 이대호는 은퇴를 공언한 시즌 전부터 롯데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우승을 마지막 목표로 밝혔다. 그리고 가장 빛나는 은퇴 시즌을 보냈지만, 결국 롯데의 5시즌 연속 가을야구 탈락이란 쓰라림을 맛봤다.

이대호는 KBO리그 17시즌 1971경기를 뛰는 동안 한 번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는 KBO리그 한 팀에서만 뛴 선수 중 최장 경기 한국시리즈 무경험 기록이다.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활약할 시절 두 차례 일본시리즈를 제패하며 MVP(최우수선수)까지 올랐지만, 끝내 소원했던 롯데의 우승 반지는 끼워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대호는 은퇴식에서 롯데그룹과 구단주에게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요청했다. 신동빈 구단주가 보는 앞에서 이대호는 “더 과감하게 지원해 주시고, 성장하고 있는 선수들이 팀을 떠나지 않고 더욱 잘할 수 있도록 잘 보살펴 달라”며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는 롯데 자이언츠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희망을 후배들은 꼭 달성하길 바라는 팀 최고참 선수의 마지막 직언이었다.

프로야구 ‘원년 멤버’인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건 1984년과 1992년 딱 두 번뿐이다. 한국시리즈 진출은 1999년이 마지막이다. 게다가 정규리그 우승 기록은 아예 없다. ‘구도’ 부산 팬들로선 정말 자괴감 드는 성적이다.

‘군계일학’ 이대호의 시대에 우승이 없었다는 건 역설적으로 이대호 한 명으로 팀이 정상에 오르기 힘들다는 방증이다. 단체 종목인 야구는 결국 선수들의 고른 기량과 구단의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우승이 가능하다. 롯데 구단이 이대호의 마지막 고언에 응답할지, 이번 스토브리그가 그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kyjeong@busan.com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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