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세계는 왜 한국에 푹 빠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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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퀴즈입니다. 맞춰 보세요. 손흥민 선수가 득점하는 영상을 보고 한국인으로서 애국심과 자부심이 솟구친다. 이런 감정을 댓글로 적을 때 Z세대가 사용하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힌트는 두 글자다. ‘국뽕’을 먼저 떠올렸다면 당신은 최소한 Y세대다. 정답은 ‘펄럭’이다. 요즘 세대는 국뽕이 차오르는 순간을 두 글자로 명쾌하게 정리한다. 펄럭!

K-열풍 주도하는 글로벌 MZ세대

기존 선진국 문화에는 식상함 느껴

역사적 과오에서 자유로운 한국에

북유럽처럼 신선한 이미지 더해져

사회적 가치관에 민감한 젊은 세대

아이돌의 젠더리스적 매력에 공감

몇 해 전부터 마음속에서 태극기가 펄럭이는 일이 잦아졌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 접수부터 BTS, 블랙핑크를 필두로 한 케이팝의 전 세계적인 인기와, 에미상으로 마침표를 찍은 ‘오징어게임’ 열풍까지 태극기가 부단히 펄럭였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한류를 넘어 지난여름에는 아시아 최초로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를 개최하며 미술계에서도 한국이 뜨거운 주목을 받았고,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임윤찬, 최하영 등 젊은 음악가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라 수상 소식을 전해 왔다. (이제 남은 뉴스라면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 성공해 태극기 물결에 방점을 찍는 일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전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었을까. 국제적인 ‘한국앓이’ 현상의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현재 사회문화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는 MZ세대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엄밀하게 말해서 한국이 ‘대세’로 올라선 지금의 트렌드는 기성세대가 아닌 글로벌 MZ세대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SNS와 다양한 콘텐츠 폼을 통해 한국 문화를 소비하며 K-세계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MZ세대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지구촌 시대가 활짝 열린 시기에 태어났다. 외국 문화에 익숙하고 해외여행도 자주 경험했다. 따라서 이국적이라는 판타지에 가치를 부여하고 매력을 느끼는 기준이 기성세대보다 높다. 예컨대 과거를 기억해 보면 기성세대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국가들을 이국적으로 여겼다.

그러나 MZ세대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앞서 언급한 예시는 여전히 좋은 지위를 확보하고 있지만 이미 서구 문물에 익숙하게 자라난 젊은 세대에게는 기성세대만큼 그 신선함과 매력의 정도가 크지 않다. 어찌 보면 경험의 희소성에 근거한 자연스러운 변화다. 그 결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유럽 국가들을 밀어내고 상대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단적인 예로 MZ세대는 뻔한 로마 여행보다 이색적인 스톡홀름 여행에 끌리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다.

이 논리를 뒤집으면 한국 열풍에 닿을 수 있다. 과거 서방에게 동양 문화권에서 단연 최고의 위상은 일본이었다. 한편 서양은 워낙 대국인 중국도 알고 있었다. 반면 한국은 잘 몰랐다. 글로벌 MZ세대에게 이미 식상해진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미지의 국가로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은 보물처럼 한국을 발견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눈에 띄게 풍족해진 것이 사실 K-트렌드를 이끈 가장 큰 공로일 것이다. 과거에 소위 구라파를, 지금 북유럽을 바라보는 호기심에는 선망의 시선이 필연적으로 개입한다. 그들이 잘살기 때문에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궁금하고 가 보고 싶고 그 사회에 한 번 살아 보고도 싶다. 마찬가지로 세계 경제규모 10위에 오른 대한민국은 오늘날 어느 국가와 견주어도 상당히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이제 외국인들은 한국이 궁금하고 한국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궁금하고 한국에 와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편 전 세계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특징으로서 MZ세대는 ‘정치적 올바름’(PC)을 중시하며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다. 이는 다시 한국의 인기 요인을 분석할 때 역사적 차원과 젠더 감수성 차원에서 북유럽에도 나란하게 투영해 볼 수 있다. 중남부 유럽과 일본은 역사책에 등장하는 제국주의 침략사와 세계대전의 주인공들이다. 중국은 소수민족 인권탄압과 홍콩과의 갈등 이슈로 이미지가 좋지 않다. 반면 세계사에서 한국과 북유럽은 부정성보다는 변두리 위치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는 편에 가깝다. MZ세대의 역사관에서 두 주체는 중립적으로 자리할 수 있다.

젠더 차원에서도 북유럽은 양성평등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며 한국은 첨예한 갈등 뒤 사회 감수성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에게 비친 한국의 아이돌은 여전사와 미소년의 모습으로 흡사 젠더리스처럼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 보인다. 젠더리스는 MZ세대가 지지하는 인종, 국가, 성별 등의 경계 허물기를 통해 차별에 반대하는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글로벌 MZ세대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가 그들의 신념에 비추어 긍정적으로 그려질 가능성들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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