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도시 풍경을 그림으로 기록하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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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의 ‘그림+책’ 낸 김민정 작가
재개발 지역 그림에세이 이어
깡깡이마을 역사 그림책도 출간
보수동 팝업북 작업에도 참여
“개발 못 막지만 작업으로 남겨”
“일상의 모습 기록하는 일 가치”

김민정 작가가 그림책 <망치질하는 어머니들> 원화 전시장에서 사라지는 도시 풍경을 기록하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금아 기자 김민정 작가가 그림책 <망치질하는 어머니들> 원화 전시장에서 사라지는 도시 풍경을 기록하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금아 기자

‘그림+책’으로 도시를 기록한다.

매축지마을, 온천장, 깡깡이마을, 보수동… 김민정 작가가 그린 부산의 동네들이다. 김 작가는 지난 7월 그림책 <망치질하는 어머니들-깡깡이마을 역사 여행>을 출간했다. 박진명 작가가 글을 쓰고 김 작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책 작업은 처음이라 쉽지는 않았어요.” 김 작가는 이 그림책의 원화를 부산 수영구 망미동 전시공간 보다에서 전시하고 있다. 김민정 개인전 ‘망치질하는 어머니들’은 29일까지 열린다.

<망치질하는 어머니들>은 출판사 너머학교가 펴낸 어린이용 역사 그림책 시리즈 중 하나이다. 김 작가는 자신의 예전 책을 본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고 했다. “이전 책은 개발로 사라지는 동네를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수채화 작업이었죠. 이에 비해 그림책은 자료를 바탕으로 상상을 더해 과거 장면을 그려야 했어요. 어린이들이 보는 책이니 친근하게 그리려고 했죠.”

2020년에 나온 그림 에세이 <어딘가에 있는, 어디에도 없는>(호밀밭)은 매축지마을과 온천1동 재개발 지역을 그린 수채화를 모은 책이다. 부산대 예술학부를 졸업한 김 작가는 개발되는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작업을 해왔다. 건물이나 공사 현장이 안개가 낀 듯 뿌옇게 표현된 유화 작업이다. “도시에서는 개발과 재개발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잖아요. 단단한 콘크리트 건물이 금방 지어지고 쉽게 부서지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연한 색으로 부서질 듯 약한 느낌으로 공사 현장을 그렸죠.”

김민정 '도시속의 섬'. 매축지마을의 모습을 그린 작업이다. 작가 제공 김민정 '도시속의 섬'. 매축지마을의 모습을 그린 작업이다. 작가 제공
김민정 '사라지는 집_금강로123번길 40'. 온천1동 재개발 지역의 모습을 담아냈다. 작가 제공 김민정 '사라지는 집_금강로123번길 40'. 온천1동 재개발 지역의 모습을 담아냈다. 작가 제공
그림책 <망치질하는 어머니들-깡깡이마을 역사 여행>에 실린 김민정 작가의 그림. 작가 제공 그림책 <망치질하는 어머니들-깡깡이마을 역사 여행>에 실린 김민정 작가의 그림. 작가 제공

개발되거나 건설 중인 모습을 그리던 작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개발 이전의 동네’ 모습에 가 닿았다. 사라질 또는 사라지고 있는 장소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감정. 김 작가는 2017년 매축지마을을 시작으로 감만1동, 영도 봉산마을, 온천1동 재개발 지역 등을 그렸다. 그는 오래된 골목을 걷고,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붉은 ‘공가’ 글자 뒤 삶의 흔적을 봤다. “동네를 기록하는 작업을 통해 부산이기는 하지만 내가 모르던 지역을 새로 알게 되고 또 그 지역에 대한 애정도 생기더군요.”

김 작가는 지난달 부산 중구가 발행한 ‘보수동 산복서점 동네잡지’ 작업에도 참여했다. 김민정 작가를 비롯해 김선화, 이선옥, 천아름 작가가 그린 보수동 그림이 <보수동-새로운 고향에 정착한 사람들의 땅>이라는 제목의 팝업북에 실렸다. 언덕배기 계단 길, 산복도로 아파트, 오래된 가게,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령각 등 작가들이 기록한 보수동의 모습이 생생하다.

김민정 작가는 최근 2년 동안 도시의 풍경 그림을 담은 책 3권을 펴냈다. 오금아 기자 김민정 작가는 최근 2년 동안 도시의 풍경 그림을 담은 책 3권을 펴냈다. 오금아 기자
팝업북 <보수동-새로운 고향에 정착한 사람들의 땅> 중 김민정 작가의 그림. 비온후 제공 팝업북 <보수동-새로운 고향에 정착한 사람들의 땅> 중 김민정 작가의 그림. 비온후 제공

개발 속도가 빠른 한국 사회에서는 무언가가 훼손되고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재개발로 한 동네가 갑자기 없어지는 것을 보면 힘이 빠질 때도 있어요. 그래도 같이 작업하는 작가들이 있어 힘이 되고 시너지 효과가 나기도 하죠.” 김 작가는 “개발을 막을 수는 없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모습을 작업으로라도 남기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당장 알아봐 주지 않아도 일상의 모습을 기록하는 일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김 작가는 완월동 풍경을 기록 중이다. “올 초에 개인전을 했던 유화 작업과 동네 풍경을 기록한 수채화를 모아서 11월에 청년작가 3인전을 통해 선보일 계획입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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