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제1회 부산을 그릵다’ 행사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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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어반스케치가 회화의 한 장르가 되어 전 세계에 열풍처럼 번졌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해방구가 되었다고 할까? 마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내듯 주위의 풍경과 일상의 재미를 작은 스케치북 속에다 다양한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다. 현장의 감흥이 살아 숨 쉬는 작은 그림이 도시인의 삶을 풍요롭게 변모시키고 있다. 여러 도시에서 어반스케치 행사가 도시의 축제가 되었다.

부산중구문화원 주최로 ‘제1회 부산을 그릵다’ 행사가 열렸다. 늦었지만 근대 도시의 출발점인 중구 원도심에서 행사가 개최됨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느 곳 보다도 부산의 역사가 많이 남아 있고, 부산의 기질이 풀풀 살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에서 부산 시민들은 물론 부산을 방문한 여행객들이 어우러져 부산의 풍경과 부산 사람들을 그릴 것이고, 그 그림들은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해마다 그 내용과 범위를 넓혀가기를 기대한다. 경주의 행사에 참가한 외국의 작가들이 부산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는 후문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부산 원도심 어반스케치 행사

전문가 ‘부산 탄생’ 강의도 들어

40계단서 도시 역사 추억하고

바닷가 사람들 분주한 삶 담아

그림으로 남기는 도시의 기억

하나씩 모이면 ‘기록’으로 가치

부산의 상징적 행사 되었으면

행사는 부산학자 류승훈 선생의 ‘부산의 탄생’ 강의로 시작됐다. 구수한 입담과 알찬 자료는 부산의 지리적·역사적 중요성과 부산 시민의 자긍심을 일깨워 주었다. 희귀한 자료가 놀라웠고, 유성기에서 흘러나온 옛 가수의 노랫소리가 잠시 어릴 적 기억에 잠기게 하였다.

다음은 원도심의 중심부를 직접 둘러보는 과정. 날씨는 유달리 맑았고, 사람들의 눈은 호기심과 기대로 반짝거렸다. 남항, 자갈치 시장, 국제시장. 그리고 부산 근대의 흔적들인 한성1918, 근대역사관, 성공회 교회, 오래된 서점 ‘우리글방’과 보수동을 지나 ‘백년어 서원’과 40계단 주변을 걸었다. 도착한 곳은 행사장인 부산중구문화원. 일제강점기 건축이던 ‘타테이시주택’을 리모델링하여, 깔끔하고 실용적으로 리모델링해 놓았다. 근대 건축의 흔적을 보존하려는 뜻깊은 발상이다.

드디어 참가자들은 3개 조로 나누어 그림을 그렸다. A조는 ‘백년어서원’, B조는 ‘우리글방’, C조는 ‘상지건축’. 참가자들은 40계단 주변에 둘러앉아 도시의 역사를 추억하기도 하고, 사라져 가는 보수동 책방골목을 아쉬워하며 그림을 그렸다. 지난 추억과 지금의 감정을 각자의 그림에 담았고, 자갈치 바닷가로 간 사람들은 삶의 분주한 모습을 담기도 하고, 푸른 바다를 화폭에 옮기기도 했다.

하나하나의 그림은, 모두 모여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잘 그리지 않았다고 하여 무슨 문제가 될까? 평소에 그냥 스쳐 지나가던 길을 다시금 세밀히 관찰하게 되었고, 오래된 시절의 사람들과의 추억을 잠시 떠올리기도 하였으니, 그로서 충분했다. 그리고 저 멀리 이 도시를 싸고 있는 어머니 같은 산과 숲, 그리고 사람들의 삶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숱한 골목길과 끝없이 계속되는 정겨운 계단들과 간간히 보이는 부산 사람들을 쳐다보고,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뿌듯하였다.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이 도시의 상징처럼 우뚝한 용두산의 탑과 중앙공원의 충혼탑을 본다. 그것의 조형이 아름답든, 그렇지 않든. 다만, 우뚝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치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이나 ‘도쿄 타워’에서처럼 어쩌면 도시의 기억은 그 선언적인 상징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 또한 하나의 그림으로 남겨 보리라.

즐겁고 보람된 이틀이 지나갔다. 그리고 스케치북에 부산의 그림 몇 점이 남았다. 이 행사가 언젠가는 부산의 상징적인 행사의 하나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시민들이 향토를 더 사랑하게 되고,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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