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피해자 “대통령 사과 필요”… 경찰은 책임 회피만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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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협의회, 진실화해위서 회견
대통령·경찰청 등 직접 사과 요구
배·보상 규정·특별법 제정도 촉구
경찰 “조사 결과 통보받지 못 해”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과 사건에 연루된 관계 기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제공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과 사건에 연루된 관계 기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제공

올 8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의 성격을 ‘국가폭력’으로 규정(부산일보 8월 25일 자 1·2·3면 보도)한 것을 두고 피해자들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사건에 연루된 국가기관 중에서도 경찰의 책임이 크지만, 경찰은 조사 결과를 통보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두 달 가까이 사과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해 피해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는 지난 14일 오후 2시 진실화해위원회가 있는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 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과 관계 기관의 사과, 실질적인 피해 구제 방안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현직 대통령과 경찰청 등 사건 관련 기관의 직접적인 사과 △형제복지원 피해 배·보상 특별법 제정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을 통한 배·보상 규정 신설 △형제복지원 피해자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실질적인 피해 구제 방안 마련·이행 등을 요구했다.


피해자협의회는 “40여 년 만에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국가의 조사기관을 통해 국가가 인정한 국가폭력 피해자가 되었다”면서도 “수십 년 세월이 무색하게도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나아가야 할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고 밝혔다. 이어 “현직 대통령과 경찰청의 직접적인 사과는 물론 피해자 배·보상 특별법 제정과 과거사정리법 개정을 통한 피해 구제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피해자협의회가 사건에 가담한 기관 중에서도 경찰을 지목한 것은 경찰이 적극적인 가해자였지만 부산시, 검찰 등과 달리 피해자들에게 단 한 차례도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85~1986년 부랑인 단속과 인계에 관여한 경찰이 2700여 명으로 당시 부산시 경찰 총 정원 5808명의 절반 이상에 이른다. 게다가 일부 경찰관이 형제복지원 단속반으로부터 뒷돈을 받았다는 피해자 증언이 나오는 등 이들과 유착 관계를 유지하면서 무고한 시민을 마구잡이로 형제복지원에 넘겼다.

그럼에도 경찰은 사건 조사 결과 발표에 아랑곳없이 계속 침묵을 지켰다. 앞서 지난 7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희근 경찰청장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경찰이 사과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공식 사과 시점과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답변했다. 사실 경찰청은 그동안 진실화해위원회의 형제복지원 피해자에 대한 사과 권고에 대해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사과 권고를 통보하는 공문을 보내야 내부적으로 공식 사과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부산경찰청 또한 같은 변명으로 일관했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아직 경찰청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관련 통보를 받은 게 없다”면서 “진실화해위원회가 경찰청에 사과 권고 등을 공식 통보한 뒤 부산경찰청에도 공문이 오면 처리 부서를 지정해 일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이 형제복지원 사건의 단순 부역 사실을 넘어 박인근 일가의 ‘하수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문을 핑계 삼아 사과 논의조차 착수하지 않은 것을 두고 피해자들 사이에서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경찰의 이 같은 태도를 일제히 비판한다.

형제복지원 피해자생존모임 한종선 대표는 “국가기관에 의한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도 사과는커녕 입장 발표도 없는 경찰은 비겁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면서 “경찰이라는 신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잘못한 일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 진실화해위원회 결과 발표 이후 경찰로부터 연락 한 통 받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박경보 자문위원장은 “지난해 경찰청에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요청했으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면서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그 어떤 경찰도 사과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사과는 제쳐 두더라도 입장 표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진실화해위원회는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개인별로 통지할 조사 결과서를 작성하느라 기관 통보도 다소 늦어졌다고 전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7일 부산시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법무부, 경찰청 등에 형제복지원 사건 결과와 사과 권고 내용 등을 담은 공문을 발송할 계획이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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