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피 묻은 빵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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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지역사회부장

SPC 계열 제빵공장 청년의 비극
직업 귀천 없는 세상 꿈같은 이야기
‘사람’ 대하는 모습이 그 사회의 수준
끝없는 ‘투쟁’만이 안전 사회 만들어

오래전 취재차 베트남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작은 오토바이가 즐비한 도로 한쪽이 어수선했다. 바닥에 가마니때기를 대충 덮어 놓은 무언가가 있었고, 밖으로 튀어나온 두 발이 보였다.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 시신이었다.

경찰관들은 시신을 옮길 차량을 기다리는 중인 듯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고인과 수많은 목격자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흔한 접촉사고와 다를 바 없었다. 생사와 지위 고하를 떠나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사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난 15일, 경기도 평택의 SPC 계열 제빵공장에서 있어선 안 될 참극이 일어났다. 20대 초반 여성 노동자가 소스를 섞는 기계에 목숨을 잃었다. 이른 새벽 부지불식간에 질식해 숨지기 전, 그는 남자친구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에서 “치킨 500봉을 까야 한다”며 과도한 업무량을 호소했다.

한데 더 경악스러운 상황은 그 다음이었다. 회사 측이 사고가 난 기계와 현장에 천만 두르고 다른 기계를 돌리며 작업을 재개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격무에 시달리며 빵을 만들다가 스러진 그의 빈소에는 파리바게뜨 빵 두 상자가 보내졌다. ‘SPC 직원 경조사 지원품’ 매뉴얼에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가슴은 더욱 무너져 내렸다. ‘피 묻은 빵’이 더 이상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된다는 여론과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뒤늦게 알고 보니, SPC 계열 작업장에서 최근 5년간 580명이 넘는 산업재해자 발생했지만 제대로 된 대책은 뒤따르지 않았다.

세계로 퍼져 나가는 ‘K문화’에 도취된 2022년 대한민국의 이런 민낯이 과거 출장길에 만난 베트남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지 알 길이 없다.

인권을 유린하는 북한을 연일 비난하고, 새터민들이 대한민국의 우월함을 찬양하는 콘텐츠를 양산하는 대한민국이라지만 다를 게 뭐가 있는지 누가 묻는다면, 그 역시 선뜻 대답할 길이 막막하다. 최소한의 안전 설비와 사고를 예방할 인력 충원마저도 비용 절감의 대상이 되는 사회여서다.

SPC그룹 회장은 사고가 발생한 지 한참이나 지난 21일 기자회견장에서 한껏 고개를 숙이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여론은 더 싸늘해 지고 있다. 그가 손에 든 안전경영 강화 대책이 무엇이든, 지금껏 그렇게 고개 숙인 많은 회장님들이 그랬듯 앞으로도 죄 없는 청춘들이 계속 죽어 나가리란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올 1월 27일 꽤나 떠들썩하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당시에 법률사무소마다 기업들의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노동자 안전 강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 ‘어떻게 하면 오너가 처벌을 피할 수 있는지’가 관심사였다.

수년 전 사건취재팀을 이끌 때, 어느 대형 건설사의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떨어져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회사가 다급히 연락한 곳은 119가 아니었다. 회사와 연계된 병원의 사설 구급차였다. 119가 출동하면 산업재해 처리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물론 크고 작은 공사 입찰에도 불이익이 생기니, 사고를 어떻게든 숨기려는 것이 산업 현장의 현실이다.

그런 현장을 잘 아는 지인이 문득 물었다. “뭐, 냄비 끓듯이 SPC 불매운동 한다고 세상이 바뀔까?” 대학과 언론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니, 심판이니 하는 말들이 떠돈다. 그렇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식어버리고, 참사는 반복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무려 28개에 달하는 SPC 그룹의 브랜드를 기억하기도 어려우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소비자들은 ‘포인트 쌓기’에 혈안이 될 것이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한참을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들은 “가족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일하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런 인식이 당연시되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산업 현장이 많은 울산과 경남 등지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일어난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 딸들은 폭발과 화재, 추락, 끼임 사고 등 수도 없는 위험 속에서 생계를 이어간다.

불황 속에 어렵게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의 입장에서는 날벼락 같은 일일 테지만, 역사는 끝없는 투쟁 속에서 이뤄진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런 희생이 낳은 소중한 결과물이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한다. 그래야 직업에 귀천이 없는 안전한 나라에 반걸음이라도 다가갈 수 있다. 사고 이후 빛나는 대처로 박수를 받는 기업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 후손들은 살아갈 수 있을까.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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