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수억 번 찔린 것 같아” 미국인 아버지 절규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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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희생자, 유족들 심경
타국서 자식 잃은 사연 ‘참담’

31일 오후 핼러윈을 앞두고 압사 참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특화거리 일대가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후 핼러윈을 앞두고 압사 참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특화거리 일대가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 아들이 서울 압사 사고가 난 곳에 있었습니다. 아직 아들과 연락이 안 되고 있어요. 소식을 알고 계신 분은 공유 부탁드립니다.”

 지난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 이후 스티브 블레시 씨가 긴급히 올린 트윗이다. 미국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그는 이날 아내와 쇼핑 도중 참사 소식을 접했다. 이에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서울에 가 있는 둘째 아들 스티븐(20)에게 급히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아들이 중간고사를 끝내고 그날 밤 이태원에 간 것을 알게 됐고, 아들의 사진과 글을 트위터에 올려 생사를 수소문했다.

 안타깝게도 블레시 씨의 간절한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블레시 씨는 사건 발생 초기 희생자 중 미국인은 없다는 보도에 잠시 안도했지만 이내 미국대사관으로부터 아들이 사망자 명단에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번에 수억 번을 찔린 것 같았다”며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블레시 씨는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아들은 동아시아에서 무역업에 종사하고 싶어 했다”면서 “이를 위해 수년 전부터 한국에서 유학하려 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두 달 전에야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4명 중에는 고국을 떠나온 14개국 외국인 희생자 26명도 포함됐다. 타국에서 황망하게 자식을 떠나보낸 외국인 부모들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일본인 아버지 도미카와 아유무(60) 씨도 이번 참사로 26세 딸을 잃었다. 그는 사고 현장에서 딸의 휴대폰을 주운 한국 경찰과 통화한 뒤에야 딸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그의 딸은 올 6월부터 한국어 공부를 위해 서울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도미카와 씨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태원 사고 소식을 접하고 ‘위험하다’고 말하려 전화했지만 딸이 받지 않았다”면서 “자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현장에 있었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 도미카와 씨는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일본인 사망자 2명 중 한 명의 지문이 딸의 것과 일치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았다.

 참사 희생자 중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온 23세 여성 그레이스 래치드도 있었다. 호주 영화사에서 일했던 그는 친구 2명과 이태원을 찾았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의 친구 타베르니티 씨는 호주 언론 W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일행이 골목에 서 있다가 천천히 조여오는 인파의 압박에 거의 질식했다”면서 “래치드는 숨을 쉴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나는 겨우 기어서 탈출할 수 있었다”며 당시 참상을 전했다. 또 “내 친구는 술 취한 사람들에 의해 죽은 게 아니었다. 핼러윈 축제의 계획 부재와 경찰과 소방 등의 관리 부실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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