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이 쌓인 국화꽃, 휴점 들어간 가게… 이태원은 거대한 ‘추모 공간’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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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가 바꾼 이태원 풍경

지하철역 출구에 임시 추모 공간
인근 가게들 문 닫고 애도 동참



31일 오후 이태원 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 변은샘 기자 iamsam@ 31일 오후 이태원 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 변은샘 기자 iamsam@

핼러윈 축제로 들떴던 이태원이 하루아침에 추모 공간으로 바뀌었다. 가게들은 문을 닫고 참사 현장과 가까운 지하철역 출구 앞은 밤새 쌓인 국화꽃으로 덮였다.

31일 오후 1시께 <부산일보> 취재진이 찾은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다음 날부터 놓인 국화꽃은 31일 이미 수북하게 쌓여 행렬을 이뤘다.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놓고 간 꽃과 초콜릿, 과자부터 막걸리와 맥주도 놓여 있었다.

31일 오전부터 서울광장과 이태원광장 합동분향소가 열렸지만, 사고 현장 바로 옆인 이곳에도 시민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사고 현장과 20m가량 떨어진 이곳은 참사 직후 시민들이 꽃을 두고 가거나 묵념을 하면서 자발적으로 마련한 임시 추모 공간이다.


31일 오후 이태원 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 변은샘 기자 iamsam@ 31일 오후 이태원 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 변은샘 기자 iamsam@

전국에서 이곳을 찾은 추모객들이 애도의 마음을 남긴 흔적은 곳곳에 가득했다. 본인을 ‘부산청년’이라고 밝힌 한 추모객은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무고한 영혼들이여, 부디 편히 잠드소서. 그대들이 가버린 삶을 하루하루 더 소중히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적은 글귀를 현장에 놓아뒀다.


31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 공간에 놓인 메모. 변은샘 기자 iamsam@ 31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 공간에 놓인 메모. 변은샘 기자 iamsam@

또 다른 추모 글귀에는 “미안합니다. 더 많이 더 즐기고 더 꿈을 꾸고 더 사랑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미처 채우지도 못한 인생의 장이 안타깝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태원역 추모 공간을 찾은 김경민(28·서울 용산구) 씨는 담담하게 국화꽃을 내려놓다가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김 씨는 “출근하는 길에 꽃이 보여 무심코 샀다가 이곳을 찾게 됐다”며 “이번엔 다른 곳에서 핼러윈을 즐겼지만 나도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겨왔다. 내 또래의 지인이자 친구가 됐을 사람들이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니 먹먹해졌다”고 말했다.

이태원에서 피자집을 운영하는 라현진(39·서울 용산구) 씨도 가게 문을 닫고 추모 공간을 찾았다. 라 씨는 “돌아가신 분들이 한 번쯤 가게에 들렀을 손님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며 “코로나 이후 인파가 몰려들 것을 대비했다면 이런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시훈(57·서울 송파구) 씨는 국화꽃을 놓은 이후에도 한참 거리를 돌았다. 정 씨는 “아이들이 다녔을 이 길을 돌면서 기도를 하려고 왔다”며 “젊은이들이 비명횡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슬픈 마음에 이곳을 찾았다. 모두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31일 오후 이태원 일대. 변은샘 기자 iamsam@ 31일 오후 이태원 일대. 변은샘 기자 iamsam@

인근 가게들도 추모에 동참했다. 사고 현장 인근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주말의 축제를 연상하기 어렵게 거리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폴리스 라인이 쳐진 사고 현장 골목에 즐비한 생수통, 비닐봉지, 과자 부스러기나 구겨진 담뱃갑들만이 이틀 전 축제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처 핼러윈 호박 스티커를 못 떼거나 바람 빠진 풍선을 여전히 달고 있는 가게도 곳곳 있었다. 가게는 대부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문구가 붙은 채 굳게 닫힌 채였다.

일부 문을 연 가게들도 숨을 죽였다. 문을 연 인근의 한 카페 주인 이 모(34) 씨는 “오전에 주문을 미리 받아둔 게 있어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며 “가게를 열기는 했지만 가게를 여는 마음도 무겁고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 표정도 무겁다. 오늘은 일찍 마무리하고 문을 닫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글·사진=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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