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진주 남성당한약방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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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0년 동안 경남 진주 지역에서 ‘나눔 샘물’ 역할을 했던 남성당한약방의 보존 결정은 우리에게 ‘진정한 나눔’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생히 보여 주는 보석 같은 사례다. 또 나눔의 선한 행동이 지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실증적으로 볼 수 있는 경우다.

그 주인공은 진주에서 50년 동안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해 온 김장하(78) 선생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김 선생의 나눔 활동은 진주 지역의 문화예술 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 역사, 환경운동 등 거의 전 영역에 걸쳐 있다.

주요 내용만 보면, 1992년 형평운동기념사업회 결성을 주도해 2004년까지 회장을 지냈고, 진주환경운동연합 고문, 진주문화연구소 이사를 맡았다. 또 지역문화를 위해 진주가을문예 신설, 진주오광대 복원, 마당극 전문극단 지원에도 발 벗고 나섰다.

교육 분야에서는 100억 원이 넘은 사재를 털어 진주 명신고를 설립한 뒤 1991년 조건 없이 국가에 헌납했고, 지난해 12월에는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고 남은 자산 34억 5000만 원을 경상국립대에 지정 기탁했다. 이 밖에 김 선생이 장학금 등으로 도움을 준 경우는 부지기수라고 한다.

정말로 개인이 벌인 나눔 활동이라고 하기에는 믿기가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김 선생은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정치권과도 철저하게 거리를 뒀다. 자신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이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인사를 왔을 때도 ‘이 사회에 있는 것을 준 것뿐이니,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사회에 갚아라’라는 말로 대신했다고 한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자신은 평생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웬만한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로 다녔다. 거주하는 집도 한약방 건물 3층이라고 하니, 철저히 ‘무욕의 나눔’을 실천한 셈이다. 지역사회가 올해 5월 말 한약방 폐업 이후 이 건물을 보존하려고 백방으로 나선 것도 그래서 충분히 수긍이 간다.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꺼린 선생이 건물 보존을 계속 반대하다가 겨우 허락했다고 하니, 그 과정 역시 감동적이다. 진주 지역민이 일컫는 것처럼 ‘시민의 스승’이 아닐 수 없다.

갈수록 각박한 세상에 공존과 나눔의 미덕을 평생 손수 실천한 김 선생의 정신이 이어지고, 더욱 널리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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