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산은 □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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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취재하기 위해 베를린에 갔을 때였다. 독일인들이 사람도 아닌 도시를 향해 ‘섹시 베를린’이라고 부르는 모습이 다소 신기했다. 알고 보니 2001년부터 13년간 베를린 시장을 지낸 클라우스 보베라이트가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Berlin ist arm, aber sexy)”라고 말해 널리 퍼진 것이었다. 당시 베를린은 말만 수도지 1인당 소득은 독일 주요 도시 중 가장 낮고, 실업률은 높고, 부채는 많아 말 그대로 가난한 도시였다. 하지만 보베라이트 시장은 낮은 임대료와 물가를 바탕으로 베를린을 창업과 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역발상이었다.

그 뒤 베를린에서는 음악, 패션, 디자인 같은 새로운 산업이 번창했다. 집값이 싸고 창의적인 분위기에 끌려 예술가는 물론이고 세계 유명 연예인들까지 몰려든 덕분이었다. 당시 베를린은 1980년대 초반의 뉴욕과 분위기가 같다는 칭찬을 들었다. 시대가 바뀌면 도시 슬로건도 달라지는 법이다. 2008년부터 베를린에서는 ‘Be Berlin’이라는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나는 베를린 사람이다(Ich bin ein Berliner)’에서 착안하여 ‘있는 그대로 베를린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 나는 내가 사는 베를린이 자랑스럽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잔혹한 범죄가 횡행하는 영화 ‘배트맨’의 배경은 ‘고담시티(Gotham City)’. 고담시티의 모델이 세계 최고의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뉴욕이다. 1970년대 뉴욕은 경제 침체로 분위기는 암울했고 범죄율은 치솟았다. 도심 공동화 현상까지 겹친 뉴욕에서는 당시 80만 명이 도시를 떠났다. 위기의 뉴욕시는 도시 브랜딩을 해결책으로 삼았다. 광고 회사들의 철저한 분석을 거쳐 1977년부터 진행된 통합 마케팅 캠페인 ’I Love New York!’은 I♡NY이라는 로고와 함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얼마나 성공적이었으면 거리의 쓰레기까지 줄었다고 한다.

부산시가 그동안 슬로건으로 사용해 온 ‘다이내믹 부산’과 갈매기와 바다를 소재로 한 상징 마크의 이미지 교체에 나선다. 상징 마크는 1995년에 만들어졌고, 슬로건도 2003년 제정되었다고 한다. 2030월드엑스포 유치를 앞두고 새로운 도시 브랜드를 만들 필요가 있는 게 사실이다. 문득 달갑잖은 부산의 별명인 ‘노인과 바다’가 떠오른다. 베를린이 “가난하지만 섹시하다”라는 말로 유명해졌듯이, 집단지성을 통해 부산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어야 할 때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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