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낡은 특혜와 이별할 때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경희 사회부 차장

주말 야심한 밤, 기자가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다름 아닌 드라마다. 언제 보아도 뽀송한 피부를 자랑하는, 그래서 대학생 연기도 어색하지 않은 배우 송중기와 찰진 경상도 사투리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감탄을 자아내는 배우 이성민의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우연히 1~2회를 연달아 보고는 이후 스토리가 자꾸만 궁금해, 개인적으로 놓칠 수 없는 드라마가 됐다.

여기에 또 하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부산의 풍경들. 드라마 속 순양그룹 회장님의 집 ‘정심재’는 CG로 기와를 덧입혔다지만 부산시장 관사임을 눈치챌 수 있었고, 더러 롯데호텔 부산도 배경으로 등장했다.

부산연구원이 최근 진행한 시민 설문조사 결과, 부산시민의 절반 가량이 시장 관사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답했다. 그만큼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던, 공개되지 않은 장소였다. 커다란 대문에다 높은 담장, 철책까지 둘러진 5500여 평 관사는 어느 부잣집 대저택 같았을 테고, 가끔 대문이 열리고 까만색 세단이 오가도 고단한 서민들에게는 다른 시공간 쯤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 ‘호화 저택’의 근간에 자신들의 노력과 희생과 기여가 깔려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채 말이다.

관사 또는 공관은 관선 시대의 유물이다. 과거 단체장을 중앙정부에서 지방으로 발령냈던 때에는 어쩌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부터 국립대 총장까지도 관사에서 거주했고 운영비 일체를 세금으로 충당했다. 하지만 시대가 한참이나 변했다. 국민 혈세가 허투루 사용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국민적 정서는 물론이고, 하물며 이제는 대통령도 청와대를 개방하지 않았던가.

해당 지역구에 주소를 둬야 출마 자격이 생기는, 주민의 직접 투표로 단체장을 뽑는 민선 시대에 관사는 불필요한 ‘낡은 것’임에 틀림없다. 1995년 민선 시대가 열리고 이미 27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권력을 가진 자만 누릴 수 있는 비밀스럽고 호화로운 공간이었기에, 권력자는 그런 ‘특혜’를 쉽게 포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많이 늦었지만 다행히도 박형준 부산시장은 2021년 시장 보궐선거 기간 전임 오거돈 시장이 거주했던 관사를 시민들에게 완전히 돌려줄 것을 약속했다. 현재 그 약속은 부분 개방과 함께 리모델링 계획 마련 등으로 이행 중이다. 2024년 1월에는 시민들의 공간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하지만 전국의 지자체 상당수가 시장·도지사 관사를 여전히 단독주택이나 아파트 매입·전세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혜·호화 관사 논란이 일자 지난 2011년 행정안전부는 지자체에 관사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지만, 자율에 맡기는 권고로는 특혜가 저절로 사라지지 않았다.

11년이 흘러 지난 4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안철수 위원장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선출된 시장. 도지사가 자기 집에 살지 않고 관사에 살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이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이런 공간은 싹 다 정리하고, 본인 집에서 살게 해야 한다”고 쐐기를 박으면서 말이다.

이제 ‘낡은 특혜’와는 작별할 때다. 이미 어린이집으로, 게스트하우스로, 전시관으로 탈바꿈한 옛 관사들도 많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려면, 이제 관사가 남아있을 자리도, 명분도 없어야 한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