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97) 일상을 잠식하는 후기 자본주의 형상화, 노원희 ‘집의 세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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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희(1948~)는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의 일원이 된 이후 꾸준히 우리 자신의 현실을 어떻게 회화로 보여줄지 고민했다. 1980년대 그를 사로잡았던 주제는 공권력이 자행하는 폭력과 도시의 빈민 노동자의 형상이었지만, 민주화 이후 빠르게 변해가는 정치·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가족과 집, 이웃 등의 일상에 눈을 돌렸다.

그 중에서도 집은 노원희의 주요한 모티브 중 하나다. 1980년대 정치 권력을 비판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경제와 자본 논리가 일상을 잠식하는 후기자본주의 시대를 집이라는 주제를 통해 접근하고자 했다.

‘집의 세월’은 4개의 연작으로 이뤄져 있다. 1996년에 한 점, 나머지는 모두 1998년에 그려졌다. ‘집의 세월 3’은 세로폭 177cm, 가로폭 130cm의 캔버스 두 개를 세로로 합친 작품으로, 회녹색의 단색조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위로부터 화면의 반절 이상을 세 그루의 버드나무에 할애했다. 빠른 붓질을 때로는 얇게, 때로는 두껍게 겹치면서 무성한 버드나무 이파리를 형상화했다. 밀도있는 상단의 붓질과는 달리, 화면 하단의 나무 아래는 회백색조의 얇은 가로 터치로 땅을 표현했다. 여기에 구식 기와집 한 채만이 홀로 서 있다.

빈약한 땅과 외롭게 홀로 서 있는 집, 그리고 오래된 버드나무는 재개발 등 급속하게 선진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며 겪은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와 인간성 상실에 대한 애잔함을 함축한다.

안대웅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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