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으로 보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1. 박수근의 감동, 김환기의 울림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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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하게 다가오는 뒷모습 … 푸르게 물결치는 고향 바다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부산일보사와 부산시립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 미술 특별전 ‘수집: 위대한 여정’ 전시장에서 ‘작가는 왜?’라는 궁금증을 가졌을 관객과 아직 전시를 보지 못한 독자를 위해 전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지면으로 만나는 코너를 마련했다. ‘수집: 위대한 여정’은 2023년 1월 29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 3층에서 열린다.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관람료는 무료이며, 인터넷(https://art.busan.go.kr/) 예약과 현장 발권으로 관람할 수 있다.


“김환기 작품은 어느 방에 있나요?” “박수근 작품은 몇 점이 출품되었나요?”‘수집: 위대한 여정’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이 많이 하는 질문이다.

박수근과 김환기, 두 작가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것일까? 방문객 관람 동선 관찰을 위해 전시장에 갈 때마다 흥미로운 반응을 마주한다. 많은 관람객이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앞에서는 삶의 애환을 마주하며 울컥한다. 그리고 김환기의 ‘작품 19-VIII-72 #229’ 앞에서는 작은 탄성과 함께 핸드폰을 꺼내 ‘인증샷’을 찍는다.

한국 근대 서양화의 거목 박수근은 향토적 소재와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거친 마티에르로 독자적 화풍을 구축했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18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했다.

농촌 풍경과 일하는 여인의 모습은 박수근이 평생을 바친 소재이다. 1930년대부터 향토적 소재를 다룬 박수근은 1950년대 독자적 흙빛과 마티에르로 이뤄진 화풍을 확립했다. 대상에 대한 단순한 묘사, 화면에 흐르는 독특한 질감으로 소박하면서 온화한 정취를 전달했다. 196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박수근에 대한 예술적 평가는 높아졌지만 곤궁한 생활은 여전했다. 수술비가 없어 백내장을 방치한 작가는 1963년 왼쪽 눈을 실명하게 됐다. 그래서일까? 작품 속 흐릿한 듯 아련하게 보이는 풍경과 모습은 마치 ‘박수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하다.

‘절구질하는 여인’은 박수근이 아내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그의 작품에서 보기 드문 대작(130×97cm)으로 간결한 구도와 투박한 질감, 밀도 있는 묘사로 작가의 무르익은 기량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인의 일상 속 애환을 따듯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담기 위해 붓을 들었던 작가의 진심이 화면을 통해 전해진다. 그렇기에 박수근의 작품 앞에선 관람객은 ‘울컥’, 그치지 않는 감동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김환기 ‘작품 19-Ⅷ-72 #229’(1972). 리움미술관 소장 ⓒ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작품 19-Ⅷ-72 #229’(1972). 리움미술관 소장 ⓒ환기재단·환기미술관

푸른색의 전면점화. 김환기는 한국 추상 화단의 선구자이다. 일본 니혼대학에 다니던 1934년 김환기는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 참여하며 추상미술 운동을 펼쳤다. 그는 1946년부터 1950년까지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며 ‘신사실파’ 운동을 이끌었다.

김환기는 우리 고유의 전통적 미의식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1950년대에는 여인, 달, 매화, 항아리, 산천, 구름, 학, 나무 등 한국적 모티프를 주요 주제로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했다. 이 시기에 김환기를 대표하는 푸른빛이 화면의 주조색으로 등장한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반영한 색깔이자, 김환기의 고향 기좌도(현 신안군 안좌도)의 바다 빛깔이면서, 작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색이기도 하다. 1956년부터 3년간 파리에서 창작 활동에만 전념한 김환기는 한국에 돌아와 1962년까지 홍익대에서 근무했다. 작가는 1963년 미국 뉴욕에 정착, 새로운 추상 세계를 펼쳐 보였다.

1974년까지 이어진 뉴욕 시기 작품은 구체적 형상은 사라지고, 점과 선만으로 구성된 완전한 추상을 향해 나간다는 특징을 가진다. 전면점화 ‘작품 19-VIII-72 #229’는 뉴욕 시기 김환기 예술세계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파동을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기존의 두껍게 쌓아 올리던 마티에르 질감은 사라지고, 수묵화와 같은 투명한 질감이 두드러진다. 여기에 김환기 특유의 청색이 어우러져 ‘무한대로 확장되는 정신성’을 보여준다.

반복되는 색점의 질서정연한 리듬, 아련한 청색의 화면 앞에서 관람객은 잔잔하게 시작해 점점 더 커지는 울림을 느끼게 된다. 그 특별한 감동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찰칵’ 인증샷을 찍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보인다.

김경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정리=오금아 기자 chris@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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