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느끼고… 예술로 감각하는 우리 시대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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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는 부산현대미술관 전시 셋

노진아 ‘공조하는 기계들’. AI로봇 조각은 관람객의 움직임과 소리에 반응한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노진아 ‘공조하는 기계들’. AI로봇 조각은 관람객의 움직임과 소리에 반응한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동시대를 사는 우리의 이야기를 미술로 마주한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누구의 이야기’ ‘친숙한 기이한’ ‘포스트모던 어린이’ 세 전시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세대에게 예술로 세상을 감각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기획전 ‘누구의 이야기’ ‘친숙한 기이한’

실천과 대안 이끄는 ‘우리 이야기’ 제시

낯섦 감지하는 감정의 잠재적 가치 탐구

체험과 공감 있는 ‘포스트모던 어린이’전

전문가 강의·토크 연계 프로그램 풍성

홍순명 '메모리스케이프'. 사건·사고 현장에서 수집한 사물들로 기억을 품은 새 오브제를 만들었다. 오금아 기자 홍순명 '메모리스케이프'. 사건·사고 현장에서 수집한 사물들로 기억을 품은 새 오브제를 만들었다. 오금아 기자

■사물과 기억을 엮어 조명하는 미래

개인의 이야기가 사회에 어떻게 공명하는가? 기획전 ‘누구의 이야기’는 환경, 인권, 젠더 등 화두를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과 실천을 제시한다. 전시 제목은 사회활동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리베카 솔닛의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에서 차용했다. 이번 전시에는 윤향로, 강서경, 홍영인, 신성희, 정정엽, 임동식, 홍순명, 날리니 말라니, 크리스틴 선 킴 9명의 작가가 65점의 작품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3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작가들의 영상, 회화, 설치, 직물공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강서경 '그랜드마더타워' 연작. 오금아 기자 강서경 '그랜드마더타워' 연작. 오금아 기자

강서경 작가는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 출품작 ‘그랜드마더타워 토우’ 전작을 국내 처음으로 소개한다. 위태로우면서도 오롯이 균형을 유지한 작품에는 작가의 할머니가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겹쳐진다. 정정엽 작가의 곡식 연작은 팥, 녹두 같은 곡물이 품은 생명력을 보여준다. 검정콩 한 알 한 알을 그려서 만든 ‘흐르는 별’ 앞에서는 우주를 느낄 수 있다.

정정엽 작가는 팥, 콩, 녹두 등 곡식 한 알에 담긴 생명력을 그림에 옮겨낸다. 오금아 기자 정정엽 작가는 팥, 콩, 녹두 등 곡식 한 알에 담긴 생명력을 그림에 옮겨낸다. 오금아 기자

홍순명 작가의 ‘메모리스케이프’는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세월호 사건, 포천 사격장 폭발 등 사건·사고 현장의 목격자인 사물들을 비닐 랩으로 감싸 새로운 오브제로 만든 작업이다. 드럼통, 의자 등이 모여 악기 또는 곤충 같은 모습의 오브제가 되어 울림을 전한다. ‘농인’으로 정체성을 드러낸 크리스틴 선 킴은 “내 차례, 네 차례”를 뜻하는 미국 수화 모양의 작업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신호를 관람객에게 보낸다. 지난달에는 작품과 연계해 수어 도슨트 투어도 열렸다. ▶3월 5일까지 미술관 2층 전시실

심승욱 ‘재구성된 덩어리’ 외 3점의 전시 전경.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심승욱 ‘재구성된 덩어리’ 외 3점의 전시 전경.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불안, 은폐된 진실 알리는 신호탄

기획전 ‘친숙한 기이한’은 개인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스며든 불안에 주목한다. 전시에서 보여주는 불안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마르틴 하이데거의 ‘섬뜩함’ 이론에 기반한다. 흔히 불안을 해로운 감정으로 인식하지만, 불안은 ‘낯선 것을 감지’하는 인류의 근원적 감각이다. 4개국 11명의 작가가 회화, 조각, 도자, 설치, 영상, AI로봇 조각 등 22점, 35피스의 작품을 전시한다.

전시는 ‘집’ ‘존재’ ‘기술’ 세 가지 키워드로 구성된다. 섬뜩함을 뜻하는 독일어 ‘운하임리히(Unheimlich)’에는 ‘집(Heim)’이 들어간다.

손몽주의 고무밴딩 작업 '긴장보행'과 문소현의 2채널 비디오 '흩어진 집' 협업 작품은 공간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오금아 기자 손몽주의 고무밴딩 작업 '긴장보행'과 문소현의 2채널 비디오 '흩어진 집' 협업 작품은 공간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오금아 기자

‘집’은 안락함과 폐쇄성이 공존하는 양면적 공간이다. 전시는 태국 작가 카위타 바타나얀쿠르는 강렬한 퍼포먼스 영상으로 시작한다. 뒤이어 손몽주 작가의 고무밴드 설치 작업과 문소현 작가의 2채널 비디오가 어우러진 신작이 공간에 대한 새 감각을 불러낸다.

‘존재’ 파트에서는 언어로 규명되지 않는 모호한 어떤 것을 보여준다. 이샛별, 심승욱, 금혜원, 김명주 작가는 경계의 틈에 존재하는 것을 작품으로 드러낸다.

금혜원 ‘구름 그림자 영혼_P05’.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금혜원 ‘구름 그림자 영혼_P05’.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노진아의 AI로봇 조각은 사람이 앞에 서면 눈을 뜨고, 말을 걸면 답을 한다. 오금아 기자 노진아의 AI로봇 조각은 사람이 앞에 서면 눈을 뜨고, 말을 걸면 답을 한다. 오금아 기자

‘기술’ 파트는 신과 기계의 중간에 있는 새롭고 기이한 존재를 대면하게 한다. 무니페리, 린 허쉬만 리슨, 노진아, 에드 앳킨스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특히 노진아의 ‘공조하는 기계들’은 부산현대미술관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과기술융합지원사업의 제작 지원을 받은 작품이다. 관람객의 움직임과 소리에 반응하는 거대한 두상 모양의 AI로봇 조각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3월 26일까지 미술관 1층 전시실

‘포스트모던 어린이’ 전시 전경. 오금아 기자 ‘포스트모던 어린이’ 전시 전경. 오금아 기자

■부산현대미술관 최초의 어린이 전시

‘포스트모던 어린이’전은 어린이를 훈육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을 비판적으로 돌아본다. 그림책 작가 안녕달이 풀어 쓴 전시 기획 의도를 보면 큰 힘을 가진 어른이 세상의 규칙을 정하고, 규칙을 따르지 않는 어린이를 혼내고 있다. 전시는 어린이에게는 자신의 마음속 여러 생각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어른에게는 어린이가 개인의 고유성을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제공한다.

‘포스트모던 어린이’전에는 36명(팀)의 회화, 조각, 설치, 영상, 음악 등 작품 130여 점이 전시된다. 백남준, 양혜규, 오형근, 이명미,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씨앗), 어스 피서, 정재형 등 다양한 예술가의 작품이 체험과 함께 제공된다. 이번 전시는 특별히 초등 저학년 어린이가 어른과 같은 눈높이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단을 설치했다. 어른이 올라가면 다른 높이에서 보는 세상을 느낄 수 있다. 전시는 5월에 ‘포스트모던 어린이’ 2부로 이어질 예정이다. ▶4월 23일까지 미술관 지하1층 전시실

‘포스트모던 어린이’ 전시장. 오금아 기자 ‘포스트모던 어린이’ 전시장. 오금아 기자

한편, 부산현대미술관은 각 전시와 연계해 큐레이터 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1월 13~14일 식경험 워크숍 ‘음식이기 전에 자연이던’ △1월 28일 강연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해’ △2월 4일 토크 ‘옮긴이의 말: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2월 18일 강연 ‘유전자조작기술 동향 및 전망 소개’ △3월 25~26일 강연 ‘섬뜩함에 관하여’. 각 프로그램 관련 자세한 내용은 부산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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