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2’와 ‘더 글로리2’, 부산에서 가장 먼저 본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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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등위 영화와 드라마 등급 분류
극장과 OTT 작품 공개 전 심의 받아야
일부 영화 ‘15세 관람가’ 분류로 논란


드라마 ‘더 글로리’ 스틸 컷. 시즌 2는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 분류 심의를 받은 후 올해 3월 공개할 예정이다. 넷플릭스 코리아 제공 드라마 ‘더 글로리’ 스틸 컷. 시즌 2는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 분류 심의를 받은 후 올해 3월 공개할 예정이다. 넷플릭스 코리아 제공

#. 정장을 입은 외국인 2명이 건물로 들어왔다. 선글라스를 낀 그들이 ‘서류 뭉치’를 꺼냈다. A4 용지보단 두껍고, 하얀색이 아닌 색지였다. 똑같은 내용의 서류 2부가 기다리던 사람들 손에 넘겨졌다.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서 실제 있었던 상황이라 알려진 내용이다. 서류 뭉치는 다름 아닌 영화 ‘아바타: 물의 길’ 대본. 배급사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부산에서 등급 분류 심사를 받기 위해 첩보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고 소문이 났다.

영등위 측은 “디즈니가 저작권과 보안에 민감하다고 알려져 생긴 소문인 듯한데 사실 여부와 자세한 내용은 확인이 어렵다”고 했지만, 한 관계자는 “보통 온라인으로 대본과 영상을 보내는데 ‘아바타2’ 대본은 외국인들이 직접 들고 온 건 확실하다”고 귀띔했다. 아바타2는 지난해 12월 7일 ‘12세 관람가’로 분류돼 같은 달 14일 개봉했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부산에서 등급 분류 심의를 받은 ‘아바타2’ 스틸 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국내 개봉을 앞두고 부산에서 등급 분류 심의를 받은 ‘아바타2’ 스틸 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등위는 영화·비디오물·광고물 관람 등급을 분류하는 공공기관이다. 2013년 서울에서 해운대구 센텀시티로 이전했지만, 여전히 그 존재와 역할을 모르는 시민이 꽤 많다.

영등위는 극장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에 상영하는 모든 영화와 영상물을 점검한다. 심의위원들은 부산 영등위 건물에 모여 콘텐츠 영상과 대본을 심의한다. 제작사와 관계자를 제외하면 공개 전 콘텐츠를 가장 먼저 보는 셈이다. 1000만 관객을 넘긴 ‘아바타2’뿐 아니라 3040 세대가 열광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도 예외가 아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도 공개 한 달 전 심의를 마쳤다. 지난해 11월 22일 ‘폭력성, 대사 등이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청소년 관람 불가’로 등급을 정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극장과 OTT 등에 공개하는 영화와 드라마 등 모든 콘텐츠 등급을 심의하는 공공기관이다. 영등위 제공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극장과 OTT 등에 공개하는 영화와 드라마 등 모든 콘텐츠 등급을 심의하는 공공기관이다. 영등위 제공

화제작을 먼저 볼 수 있어도 심의위원들 고충은 만만찮다. 성인물도 단순히 등급을 매기긴 어렵다. 지속적인 성기 노출 등의 요소가 있으면 ‘제한 상영가’ 등급이 되기에 한 장면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제작사가 특정 장면을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줄 수 있다.

영화는 전문위원 12명이 조를 나눠 영상과 대본을 심의한다. 여기서 이견이 나오면 위원이 9명인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로 넘긴다. 논의 끝에 다수결로 ‘15세 이상 관람가’ 같은 등급을 정한다. OTT 드라마 등은 위원이 국내 7명, 국외 10명으로 나눠진 2개 비디오물등급분류소위원회가 바로 심의한다. 영화, 청소년, 언론, 법률 등 여러 분야 전문가가 심의위원을 맡는다.

지난해 영등위에서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은 뒤 흥행에 성공한 ‘범죄도시2’.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해 영등위에서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은 뒤 흥행에 성공한 ‘범죄도시2’.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제작사는 등급 분류가 흥행 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난해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 영화로 16년 만에 ‘15세 이상 관람가’라 화제가 됐다. 당시 박 감독은 “더 많은 관객을 초대하려는 생각은 아니었다”고 했지만, 영화계에서는 “흥행을 고려해 관람 등급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듯하다”는 말이 나왔다.

‘범죄도시2’와 ‘독전’은 등급 분류가 흥행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영화로 꼽힌다. 두 영화 모두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이었기 때문이다. ‘범죄도시2’는 ‘시신의 팔 등 신체를 자르는 간접 장면이나 살상 장면들이 다소 거칠게 묘사되나 구체적이지는 않은 수준’, ‘독전’은 ‘총격전, 총기 살해, 고문 등 폭력 묘사와 마약 제조와 불법 거래 내용이 빈번하지만 제한적으로 묘사됐다’는 이유가 제시됐다. 영등위는 “등급 분류 내부 규정에 따라 판단했다”고 했지만, 한동안 분류 기준을 두고 논란이 됐다. 결과적으로 ‘범죄도시2’는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아 코로나19로 침체에 빠진 극장가 회복에 기여했다는 의견도 있다.

극장 관객 500만 명을 동원한 영화 ‘독전’ 스틸 컷. 2018년 15세 관람가를 받아 논란이 됐던 작품이다. (주)NEW 제공 극장 관객 500만 명을 동원한 영화 ‘독전’ 스틸 컷. 2018년 15세 관람가를 받아 논란이 됐던 작품이다. (주)NEW 제공

다양한 영상물을 심의하면서 나온 에피소드도 많다. 영등위 측은 “18세 이상 관람가로 홍보 마케팅을 할 테니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원한다는 제작사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OTT는 심의 기간이 최대 14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제작사도 있었다”며 “‘내일 콘텐츠 공개 예정인데 오늘 등급 분류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느냐’는 문의도 있었는데 순서대로 심의하는 게 원칙이라 일정 조정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OTT 콘텐츠가 범람하면서 영등위 심의 업무도 급증한 상황이다. 이에 올해 3월부터는 사업자가 우선 등급을 분류해 공개하는 OTT 자율등급분류제가 적용된다. 대신 영등위는 OTT 콘텐츠 공개 이후 직권으로 등급 분류를 조정하거나 취소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기에 모니터링 등 철저한 사후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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