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제자리 찾는 경윳값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원유에 열을 가해 정제할 때 맨 먼저 나오는 유류가 불순물이 거의 없는 휘발유(가솔린)다. 이어 등유, 경유, 중유 순으로 나온다. 증류 시 액체의 끓는 점이 낮은 순서대로 석유 제품이 생산되는 것이다. 이 중 휘발유와 경유는 자동차 연료로 많이 쓰인다. 특히 경유는 휘발유에 비해 연비 효율이 뛰어나 디젤 엔진이 장착된 대형 차량과 선박의 연료로 사용돼 왔다.

일선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차량용 기름값은 경유가 휘발유보다 L당 200원가량 낮은 게 상식으로 통했다. 경유 가격이 더 싼 것은 경유에 매기는 세금이 휘발유에 붙는 세금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이는 경유가 연료인 화물차로 영업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운전기사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조치였다. 경유의 주된 쓰임새가 국가 지원이 필요한 산업용인 것도 한 이유다.

지난해 5월 10일 시중 경윳값이 폭등하면서 L당 가격은 1939.71원으로 휘발유(1937.92원)를 앞질렀다. 이때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가격 역전 현상이 일어나 지난해 11월 경유가 휘발유보다 L당 223원이나 비쌌던 적도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2월 24일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경유 수급 차질이다. 전쟁 탓에 러시아산 경유가 유럽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국제 경윳값을 급등시켰다. 게다가 지난해 우리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휘발유를 위주로 유류세를 대폭 인하하는 바람에 경유가 더 비싸졌다.

이 때문에 2021년 요소수 대란을 경험한 디젤 차량 운전자들은 경윳값이 더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 헤매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경유 쇼크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경윳값 폭등은 지난해 화물연대가 두 차례 총파업을 벌인 원인의 하나로도 작용했다. 유류비 추가 부담액이 커 화물차를 운행할수록 손해라는 주장이었다.

최근 휘발윳값은 조금씩 오르는 가운데 경윳값이 크게 떨어지자 전국적으로 경유와 휘발유 가격차가 10원 이내이거나 동일한 주유소가 속출하고 있다. 경윳값이 근소하게 다시 싸져 가격이 재역전된 곳도 있다고 한다. 제자리를 찾아가는 경윳값은 국내 차량 약 2600만 대 중 42%(1100만 대) 정도인 디젤차 소유자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경윳값을 포함한 모든 유류 가격이 몇 년 전보다 오른 게 엄연한 현실이다. 서민의 연료비 부담 완화를 위해 하루빨리 가격이 안정화되길 바란다. 디젤차가 연료비에 흔들리고 매연 발생 문제도 있는 만큼 앞으로 전기차나 수소차로 대체되는 사례가 급증하지 싶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