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2호기 ‘사용후핵연료’ 새 저장시설 놓고 갈등 첨예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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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건식시설 본격 추진
"현재 시설 2032년 포화" 홍보
장안 주민들 "설치 결사 반대"
현수막·성명서 등 반발 이어 가

한수원이 고리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설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원전 인근 주민과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고리원전 2호기 전경. 부산일보DB 한수원이 고리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설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원전 인근 주민과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고리원전 2호기 전경. 부산일보DB

한수원이 최근 이사회를 열고 고리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설치를 본격적으로 추진(부산일보 2월 8일 자 8면 보도)하고 나서자 원전 인근 주민과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이하 고리본부)에서는 직원을 대상으로 건식저장시설 설치 독려에 나섰지만, 기장군 주민들은 고리본부 인근에 반대 현수막을 내거는 등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지난 21일 〈부산일보〉 취재진이 고리본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의 홍보물이었다. 홍보물들은 입간판이나 사내 현수막 게시대에 게재된 현수막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됐다. 한수원이 건식저장시설 설치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휴대전화, 개인화기 반납 등 각종 보안 절차를 거치고 안전모와 안전화를 착용한 뒤 고리2호기에 들어서니 윙윙거리는 터빈 소리와 함께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겉보기에는 일반 공장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시설물 곳곳에는 ‘질식 주의’라고 적힌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각종 제어장치가 모여있는 주 제어실에서는 작은 움직임조차 조심스러워 40년 전 지어진 고리2호기가 여전히 운영 중인 발전소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고리2호기 내부에 위치한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시설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고리본부에서 제공하는 방호 가운과 면양말, 면장갑 등을 착용해야 했다. 방호 가운 주머니에 방사능 피폭량을 측정하는 기계인 열형광선량계(TLD)와 자동선량계(ADR)를 넣은 후에야 습식저장시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습식저장시설 내부에 들어서자 푸른색 수조 안에 담긴 사용후핵연료 저장랙의 모습이 보였다. 12m 높이의 수조에는 920개의 사용후핵연료 다발이 들어갈 수 있다. 현재 고리2호기 습식저장시설에는 약 740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보관돼 있다. 수심이 깊고 조명이 어두운 탓에 수면 아래를 자세히 볼 순 없었지만 여유 공간이 많지 않은 듯해 보였다.

한수원 측은 현재로서는 2028년이 되면 습식저장시설 보관 용량이 포화에 이른다면서 수조에 조밀저장대를 설치해 보관 용량을 늘리면 2032년까지 보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치홍 고리본부 PA추진팀 차장은 “2032년에는 용량을 더 이상 늘릴 수 없을 것으로 보여 건식저장시설 설치가 절실하다”며 “규모 7.0의 지진 등 중대 사고 발생에도 안전상 문제가 없도록 건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수원의 이같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반대는 거세다. 고리본부가 위치한 기장군 장안읍 곳곳에는 건식저장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나부꼈다. 장안읍 주민자치회 등 7개 단체가 모인 장안읍 발전위원회는 지난 21일 경주에 위치한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찾아 성명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들은 “주민 목숨을 도외시한 고준위폐기물 임시저장고 설치를 결사 반대한다”는 뜻을 강력히 밝혔다. 장안읍 발전위원회 관계자는 “추후 산업통상자원부나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도 항의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며 “고리본부 측이 건식저장시설 설치를 계속 고집한다면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집회도 열 것”이라고 밝혔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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