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는 ‘전국적 조선무용’, 동래야류는 ‘지역적 조선무용’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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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무용의 미학과 하이데거의 진리/배학수


<조선무용의 미학과 하이데거의 진리>. 해피북미디어 제공 <조선무용의 미학과 하이데거의 진리>. 해피북미디어 제공

배학수 경성대 교수가 쓴 <조선무용의 미학과 하이데거의 진리>는 명쾌한 논리에 새로운 주장을 많이 담고 있다. 통상 말하는 ‘한국무용’은 ‘한국적 무용’이라 해야 한다고 한다. 전자는 한국에서 하는 모든 무용이고, 후자는 전통무용에 바탕을 둔 무용이라는 거다. 그는 ‘1910년 이전에 창작되고 연행된 춤’을 전통무용으로 정의한다. 1930년대 한성준이 창작한 살풀이춤, 승무, 태평무 등을 ‘신전통무용(신무용)’이라고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상 ‘우리 춤’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무용’도, ‘전통무용’도 아니다. 그래서 ‘조선무용’으로 부르자는 거다.

그리고 조선무용을 ‘전국적 조선무용’과 ‘지역적 조선무용’으로 나눈다. 전자에는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한량무 입무 신무용 정재 교방무 검무, 후자에는 동해안별신굿 동래고무 동래야류 수영야류 지전무 동래학춤 지신밟기를 넣어놨다.

아주 새롭게, 파격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동래야류는 들놀음(野遊)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는 밤놀음(夜遊)이라고 본다. 이훈상 동아대 명예교수가 찾아낸 1919년 무렵 동래 유지 이광욱의 서간문에 나오는 ‘야류계(夜遊契, 밤놀음계)’라는 조직 이름이 그 근거다. 또 동래야류를 연행한 이들은 이서(吏胥)집단으로, 요컨대 농민이 아니라 향리나 장교였다는 점도 농촌 들놀음이 아니라 밤놀음의 가능성을 넘볼 수 있게 한다는 거다.

동래야류의 연희 주체는 중인계층이었기 때문에 말뚝이가 양반을 모욕하는 장면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양반에 대한 서민의 저항, 특권계층에 대한 피지배계층의 저항이라기보다는 중인계층의 신분 상승 욕구, 권력 의지의 표출로 볼 수 있다는 거다. 또 1928년 ‘원형 동래야류’에는 영노 과장이 없었으며, 그것은 1960년대 후반 추가됐을 거라는 주장도 펼친다.

수영야류도 농경의례와 상관없다며 독특하게 푼다. 수영야류에서 말뚝이는 양반 이상의 지식을 자랑하는데 일반적으로 수영야류를 양반에 대한 평민의 야유 풍자로 푸는 건 이상하다고 한다. 그는 니체적 개념을 가져와 ‘힘을 향한 의지의 표출’로 해석한다. 수영야류 4개 장에는 모두 죽이고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특히 그렇다는 거다. 영노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어있는 파괴성이라는 괴물의 상징이라는 거다.

부산에 종이 다발을 들고 진혼무로 추는 김진홍류 지전춤이 있다. 이 지전춤은 동해안별신굿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진홍이 동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김석출의 사촌 여동생 김계향에게 지전춤을 배웠다고 구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 교수는 동해안별신굿은 풍어제이지 진혼굿이 아니라고 한다. 또 별신굿에서 술의 길이가 짧은 무구는 지전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본다. 김진홍 지전춤은 동작과 의미를 고려하면 동해안별신굿이 아니라 진도씻김굿에서 유래한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김진홍 지전춤의 반주 음악이 진도씻김굿 박병천의 용신풀이라서 더욱 그렇다는 거다.

동래학춤의 경우, 학의 동태를 모방한 춤이라고 하지만 그는 학춤이 아니라고 본다. 학춤은 학의 탈을 쓰고 추는 춤이라는 거다. 원래 동래학춤은 동래야류 본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추었던 짤막한 여러 개의 단무(短舞) 중 하나로, 도포와 갓을 쓰고 추던 큰배김춤이었다는 거다. 그는 ‘동래 큰배김춤’으로 부르는 것이 더 맞는다고 주장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예술 창작은 작품에 진리를 건설하는 활동이며, 예술 감상은 작품에서 전개되는 진리를 깨닫는 활동이라고 한다. 배 교수는 ‘진리’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거 같다. 배학수 지음/해피북미디어/296쪽/2만 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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