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위한 대승적 결단” vs “일본 가해기업에 면죄부”(종합)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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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본 버티는 상황 고육책”
국내 기업 후원금 모아 배상
일 ‘김대중-오부치 선언’ 재확인
“대법 판결 취지 전혀 못 살렸다”
피해자 지원단체 강력 반발
시민·사회단체 촛불집회 예고
야권 “외교사 최대의 치욕”
국힘 “용기 있는 첫걸음 뗐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징용 피해배상 문제 해결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징용 피해배상 문제 해결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6일 발표한 일제 강제징용 해법의 골자는 우리나라 재단이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와 일본 측의 ‘과거 담화 계승’으로 요약할 수 있다.

외교부의 설명자료에 따르면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은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 3건의 원고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기로 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두 피고기업이 배상 의무를 지게 됐지만, 일본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책임이 끝났다고 완강하게 버티는 상황에서 내린 ‘고육지책’이다.


아직 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의 경우에도 원고 승소가 확정되면 동일한 방식으로 판결금 등을 지급할 예정이다. 재원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포스코와 한국도로공사 등 16개가량의 국내 청구권 자금 수혜 기업이 기여금을 낼 곳으로 꼽힌다.

피해자들이 요구해 온 또 다른 호응 조치인 ‘사과’ 문제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고, 앞으로도 이어 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는 우회적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이날 “1998년 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는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가 담겨 있다. 일본이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하지만 일본 측의 직접적인 사죄나 반성의 몸짓은 나오지 않았고 5월 일본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을 초청하는 방안 등에도 선을 긋는 분위기여서 향후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앞으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정부 해법과 절차를 직접 설명하고 판결금 수령 동의를 구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안에 반대하는 원고들은 이전과 같이 집행절차를 진행한다는 방침이어서 ‘현금화’의 불씨가 살아 있을뿐더러 정부가 공탁 등으로 이를 중단하려 할 경우 또 다른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


6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광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정부 방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광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정부 방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 측은 강하게 반발한다. 애초 시작점이 된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해자 지원단체와 법률대리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행정부가 일본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시켜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산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강제징용피해자 양금덕할머니 부산시민 평화훈장 추진위원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윤 대통령이 이번에는 한 술 더 떠 강제징용 해법이랍시고 일본과 일본기업의 사죄배상 없이 국내기업만의 후원금을 모아 사실상 위로금을 주는 방식을 발표하고 강행했다'고 비난했다. 피해자 지원단체는 7일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해 실제 소송에 참여했던 피해자 및 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촛불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여야 정치권 반응도 크게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의 경술국치” “외교사 최대의 치욕” 비판에 이어 윤 대통령을 향해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과 다를 게 뭐냐”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정권이 역사 정의를 배신하는 길을 선택했다”며 “이는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짓밟은 2차 가해이자 대법원 판결과도 배치되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누구도 이해 못 할 또 하나의 외교 참사”라며 “대법원 판결까지 정면으로 위배하며 서두르는 윤석열 정부의 해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미래와 국익을 향한 대승적 결단”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향한 윤석열 정부의 강한 의지”라고 평가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용기 있는 첫걸음을 뗄 수 있었던 것은 고령의 피해자들에 대한 무한 책임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치열한 고민, 절실함이었다”면서 “일본 정부의 성의 있고 전향적인 화답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 글에서 '강제징용 문제는 역대 정권에서 폭탄 돌리기식으로 아무도 손대려 하지 않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비판과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과거 협정만 내세우지 말고 한국 정부의 결단에 성의 있게 호응해야 한다. 그에 따라 이번 합의의 지속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밝혔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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