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리포트] “이미 ‘일중독’ 사회인데…” 외신도 주 69시간 근무 갸우뚱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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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언론, 근로시간 개편 관심
장시간 노동 우려 증폭 전달해
ABC는 ‘과로사’ 영문 표기까지
“주 4일제 화두 속 한국은 역행”
“칼퇴도 힘든데 한 달 휴가 공허”

각국 언론이 한국 정부의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 추진에 대한 후폭풍을 보도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각국 언론이 한국 정부의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 추진에 대한 후폭풍을 보도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일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근무하도록 허용하는 ‘주 52시간제 유연화’ 방안을 공개하자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과도한 업무에 시달릴 것으로 우려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민심 이탈 조짐까지 나오자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해당 개편안에 대해 재검토 지시(부산일보 지난 15일 자 1면 보도)를 내렸다. 외신도 이번 논란을 비중있게 다루며 한국의 장시간 노동 문화를 비교적 깊이 있게 소개했다.


■OECD·G20가 인정한 ‘과로 국가’

다양한 외신이 정부의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 추진 논란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1일 ‘한국, 이미 긴 주 52시간 근무 시간에서 주 69시간을 제안하다’는 기사에 정부 개편안을 둘러싼 논란을 보도했다. 경제지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미국 포춘 역시 주 최대 69시간 근무 적용 때 예상되는 부작용과 한국의 장시간 노동, 부작용 등을 알렸다.

호주 방송 ABC는 윤 대통령이 근로시간 유연화 법안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던 지난 14일 한국어 ‘과로사’를 영문으로 표기하며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 논란 보도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ABC는 “한국의 장시간 근로 문화 때문에 ‘과로사’(Kwarosa)라는 말이 있다”며 “이는 극심한 노동으로 인한 심부전이나 뇌졸중으로 돌연사하는 것을 일컫는 단어”라고 보도했다. ABC는 “호주는 주당 최대 근무 시간은 38시간이며 연장 근무의 상한선은 없지만 근로자들은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초과근무를 거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신이 이번 보도에서 한국의 장시간 근무를 보여주기 위해 즐겨 쓴 통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하는 각국의 한 해 근무 시간이다. 주요 20개국(G20) 중 자료가 있는 12개 국가의 통계를 보면 한국인은 1년에 1915시간을 일해 멕시코(2218시간) 다음으로 근무 시간이 길다. 이는 또 OECD 국가 평균인 1716시간 보다 200시간 가까이 많은 수준이다. OECD 회원 38개국으로 확대해도 한국인의 근무 시간은 멕시코, 코스타리카(2073시간), 콜롬비아(1964시간), 칠레(1916시간) 등에 이어 5위로 기록돼 여전히 상위권이다.

한국의 한 대기업 직장인은 WP와의 인터뷰에서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지만, 오후 9시나 10시까지 일하는 게 일상이다”며 “그래서 주 69시간 근무제를 언급하는 헤드라인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 어쨌든 나는 장시간 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에서 주 4일 근무제는 잊어라?

고용노동부는 이번 발표안을 두고 ‘장시간 노동 회귀’ 우려가 나오자 4주 평균 근로시간이 주당 64시간을 넘을 수 없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또 건강권 보호를 위해 주 최대 69시간 일할 경우 반드시 11시간 연속 휴식이 보장된다고도 했다. 일이 없을 때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활용, 기존 연차휴가를 더해 ‘제주 한 달 살기’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외신 보도의 논조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FT는 “2020년 한국 기업의 40% 근로자만이 연차 휴가를 완전히 소진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의 한 직장인은 FT에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기 전에 상사가 퇴근할 때까지 퇴근할 수 없었다”며 “만약 내가 한 달간 휴가를 낸다면 회사는 내 책상을 치울 것이라고 장담한다”고 말했다.

WP는 11시간 연속 휴식 보장에 대해 “여기에는 출퇴근 뒤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통한 업무 지시는 고려되지 않는다”고 썼다. 포춘은 “한국 근로자의 14%만이 노동조합에 속해 있어 사측과 보다 유연한 노동 시간을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ABC가 지적했듯이 주 최대 69시간이 촉발할 수 있는 건강권 침해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WP는 “세계보건기구는 장시간 노동을 뇌졸중과 심장병의 위험 증가와 연관시켰다”고 전했다. 포춘 보도의 흥미로운 지점은 미국과 영국 경제계에서 주 4일제 근무가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 한국에서는 거꾸로 근로시간 연장을 추진 중이라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포춘 기사의 제목도 ‘한국에서 주 4일 근무제는 잊어라’였다.

노동계는 이번 정부 개정안 관련 “‘글로벌 스탠더드’(세계 기준)에 맞게 현대화하기 위한 것이다”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부산노동권익센터 박진현 주임은 “정부 주장대로 연장근로 시간을 주 단위로 관리하는 나라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대부분 나라에서 주 단위는 물론 일 단위까지 근로시간 상한선을 둬 장시간 노동을 방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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