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 감청 뚫린 대통령실, 안보·동맹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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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밀문건 정보 요구로 진상규명하고
유감 표명, 재발 방지 약속도 받아야

더불어민주당 국방위, 정보위, 외통위원 등이 10일 국회에서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감청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국방위, 정보위, 외통위원 등이 10일 국회에서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감청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의 대통령실이 미국의 감청에 뚫렸다. 미국 정보기관이 동맹국들의 내부 논의를 감청한 정황이 담긴 기밀문건 100여 건이 유출되면서 특히 한국 국가 안보의 구멍이 드러난 것이다. 미 정보기관이 국방부에 정보보고한 문건이 SNS에 대량 유출됐고, 뉴욕타임스가 그 내용을 검증해 보도하면서 파문은 확산되고 있다. 2013년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이 동맹국까지 감시해 왔다는 사실을 폭로한 지 10년 만이다. 한국 대통령실 감청 사건으로 미국은 한국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청을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번에 드러난 기밀문건으로 한국은 매우 난처한 상황에 몰리게 생겼다. 미국이 지난해 말 한국에 포탄을 수출해 달라고 요청한 시점 이후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건에 따르면 3월 초 이문희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외교비서관이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의 대화에서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훼손 가능성을 지적하자, 김 실장이 155mm 포탄 33만 개를 폴란드에 우회 판매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민감한 주변 정세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 원칙을 깨는 발언을 한 고위직 인사의 실명과 구체적 숫자까지 드러나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관련된 두 사람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한 달여 앞두고 갑자기 사직해 더욱 석연치 않다.

중앙정보국(CIA)이 작성한 문건 중에는 정보 출처가 ‘신호 정보 보고(시긴트)’라고 적힌 부분이 있다고 한다. 시긴트는 전자 장비 취득 정보, 즉 감청한 내용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동안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동향을 포함한 민감한 정보를 공유하는 동맹이라고 굳게 믿어 왔다. 그런데 미국이 동맹국의 국가안보실 대화를 감청하고 있다면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스파이 행위로 동맹을 흔들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이런 일이 또 생기면 한·미 동맹 관계에 대한 심각한 손상이 우려된다.

대통령실은 “양국 상황 파악이 끝나면 필요할 경우에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라며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방미를 앞두고 사실관계를 더 명확하게 하려는 뜻이겠지만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 미국에서도 비판받는 동맹국 감청에 대해 당사자가 함구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전 외교비서관과 김 전 국가안보실장과의 대화 내용이 사실인지 밝히는 게 뭐가 어렵나. 정부는 당장 미국 정부에 해당 보도 진위와 기밀문건 관련 정보를 요구해서 진상을 밝혀야 한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양국 신뢰를 정면으로 깨뜨리는 주권 침해 행위다. 안보와 동맹을 위해서라도 강력한 유감 표명과 함께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 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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