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4·3의 온전한 해방을 향한 문학적 고투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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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밑에서>. 길 제공 <바다 밑에서>. 길 제공

재일한국인 김석범은 <화산도>의 작가다. 화산도는 화산섬 제주도를 말한다. 역사의 뜨거운 마그마가 제주도 역사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제주 4·3 사건이 그것이다. 4·3의 온전한 해방을 향한 문학적 고투가 김석범의 글쓰기였다.

장편소설 <바다 밑에서>는 항쟁의 패배 이후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돼 일본으로 도망한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을 통해, 4·3의 진실과 그 현장에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목소리를 전한다. “모든 죽은 자는 산 자를 위해 있고, 죽은 자는 산 자 속에 살아 있다.” 작가는 “산다는 것은 역사를 계승한다는 것”이라는 명제를 말한다. 그의 글쓰기가 거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언어가 얼어붙고 말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아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눈썹 한 올도 꼼짝하지 못할 공포의 침묵.” 도망친 게릴라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기 위해 스스로 목숨은 끊은 이가 당부한 “돼지가 되어서라도 살아남아라”는 말의 뜻을 알지 못했다. 항상 혼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울적한 심상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살육의 조국에서 도망쳐 적국에 목숨을 의탁한 목숨 속에 ‘죽음의 기억’이 소중히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죽은 자들의 의지가 ‘돼지 같은 그 목숨’ 속에 살아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올해 아흔여덟 살의 김석범은 기억을 빼앗으려는 거대한 시간의 수레바퀴 아래, 자신의 늙고 가난한 몸을 밀어 넣어 그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어보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준다”고 옮긴 이가 적었다. 김석범 지음/서은혜 옮김/길/564쪽/2만 3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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