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기억하기, 진실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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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 부산일보DB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 부산일보DB

‘타이타닉’(1998)은 재난의 비극 속에서도 결코 가라앉지 않는 사랑을 그린 영화다. 영국 사우스햄튼에서 출발해 뉴욕으로 향하던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다루었다. 몰락한 명문가의 딸 로즈 드윗 뷰케이터는 상류층의 관습에 넌더리가 난 데다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가난한 떠돌이 화가 잭 도슨은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잭은 자살을 시도하는 로즈를 구하고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출항 4일째 배가 빙하와 충돌해 침몰하면서 사랑의 항해는 닻을 내리고 말았다.

참사는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재난을 말한다. 생존자나 유가족은 격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몸과 마음이 훼손되어 죽음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참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우리 시대에 목도한 참사만 해도 대구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여럿이다. 충격과 비애에 휩싸이지만 쉽게 잊는다. 아니, 손쉬운 망각을 강요한다. 국가와 지자체는 피해를 보상하고 서둘러 마무리하는 데만 급급하다. 진실을 규명하려는 유가족이나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가장 큰 비극은 참사의 진실과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는 데 있다. 망각 속에 묻어버린 진실은 또 다른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생존자나 유가족의 고통을 어떻게 보상할 수 있겠는가. ‘워스(Worth)’(2020)는 9·11테러 후 미국 정부의 보상 과정을 다룬 영화다. 하버드 로스쿨 케네스 파인버그 교수는 책임자로서 33개월 동안 피해자 950명을 만나 연봉과 남은 수명을 기준으로 보상금을 제시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를 거부한다. “화가 납니다. 하나님께도 화가 나고, 이런 일이 있게 한 이 나라에도 화가 나요.” 유가족의 발언에서 파인버그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분노하고 위로받을 권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생명의 가치(Life Worth)란 결코 수치화할 수 없다. 이는 참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로즈 도슨”. 로즈는 생존자를 확인하는 승무원에게 자신을 잭 도슨의 아내라 명명했다. 로즈 도슨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의 삶은 곧 잭 도슨의 삶이기도 하다. 참사의 기억을 오롯이 간직한 채 노년에 이른 로즈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곳을 찾아 다이아몬드 ‘대양의 심장’을 던진다. 심장을 얻은 바다는 로즈의 빛바랜 시간을 생생한 기억으로 돌려준다. 여전히 화려한 타이타닉호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잭이 로즈를 환하게 맞이한다. 사랑이 어떻게 침몰할 수 있겠는가. 재난(disaster)이라는 단어는 별이 떨어진다는 뜻을 품고 있다. 재난 참사로 별이 되어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는 4월이다. 기억하기는 진실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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