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미치려면(及) 미쳐라(狂)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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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식 경제·문화 파트장

BIE 실사단 부산 방문 때 한 말
지나치게 ‘아전인수식 해석’ 경계
실사단, 철저히 포커페이스 유지

부산 시민 유치 열기 경쟁국 압도
리야드와 경쟁서 우리 이기려면
지금 누군가는 분명 미쳐야 할 때

올해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몇 지인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안부를 묻고 식사하는 자리였다. 식사 중 얘기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부산 유치로 모아졌다. 이때 한 분이 “부산이 엑스포 유치에 성공하려면, 누군가는 미쳐야 하는데…”라며 아쉬운 듯 말했다. 그 말은 ‘지금 온전히 엑스포에 미친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들렸다. 함께 자리한 다른 이들은 “그러게 말입니다”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몇 달이 흘렀다.

이달 초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이 엑스포 현지 실사를 위한 부산 방문을 마치고 돌아갔다. 휘몰아쳤던 엑스포 유치 열기는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듯하다.

하지만 실사단이 부산 방문 때 쏟아낸 말은 뭇사람들 사이에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대부분은 실사단의 말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벌써 부산 유치가 코 앞에 다가온 듯 말하는 이들도 있다. 부산 방문 중 실사단이 쏟아낸 ‘어메이징 부산’ ‘부산은 모든 것을 갖췄다’ ‘준비를 잘한 것 같다’ ‘엄지척’ 등의 말과 반응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마치 금방이라도 부산엑스포가 성사된 듯 들떠 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실사단을 통해 우린 단지 ‘희망의 싹’을 보았을 뿐이다. 그렇기에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실사단은 우리뿐만 아니라 엑스포 유치 경쟁국인 사우디 리야드 현지 실사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리야드 실사 후 BIE 디미트리 케르켄테즈 사무총장은 “사우디 개발 아이디어와 엑스포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당시 BIE 실사단 단장을 맡은 파트릭 슈페히트 BIE 행정예산위원장은 “사우디의 엑스포 개최 능력을 확인했다. 사우디와 리야드는 우리가 요구한 모든 것을 갖췄다”고 칭찬했다. 더욱이 부산 방문 중 실사단은 부산의 엑스포 유치 준비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음에도 정작 사우디 리야드와 부산을 비교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엔 “비교하기 어렵다”고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쯤 되면 현지 실사 기간 내뱉은 그들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미리 샴페인을 터트릴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어쩌면 그들은 철저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더 철저하게 6월을 준비해 ‘화려한 11월’을 맞아야 한다.

BIE 실사단은 엑스포 유치 경쟁국들의 현지 실사를 바탕으로 각국 실사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BIE총회에서 공유한다. 보고서는 11월 말 엑스포 개최지 결정 투표를 가를 중요한 기초자료인 셈이다. 따라서 6월 BIE 총회는 향후 2030엑스포 개최지를 선정하는데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총회에서 171개 회원국은 실사보고서를 참고하고, 우리나라는 BIE 회원국을 대상으로 경쟁국과 함께 4차 프레젠테이션(PT)을 벌인다.

유치를 추진 중인 부산 엑스포는 과거 대전이나 여수에서 열린 인정 엑스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규모가 큰 등록 엑스포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비견될 정도며 경제 효과는 오히려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부산으로서는 도시를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다. 부산이라는 지명이 생긴 이후 이런 기회는 없었다. 유치에 성공한다면, 이런 규모의 행사 개최도 처음이 된다. 역대 엑스포 개최도시들이 엑스포를 통해 세계에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부산엑스포 또한 세계에 부산이란 이름을 제대로 알리는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회가 미치도록 간절하다.

그동안 현지 실사에 주력했다면, 이젠 막바지 표심을 좌우할 6월 BIE총회에 집중해야 한다. 실사단이 부산을 방문했을 때 보여준 부산 시민의 유치 열기는 경쟁국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실사단은 부산 시민의 환영에 “놀랍다. 팝스타가 된 것 같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감히 어떤 도시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시민의 열정이 있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서는 안 된다. 시민은 여기에 응했다. 지역 언론도 여기에 응했다. 이젠 2030부산엑스포유치위원회와 행정이 미칠 때가 됐다.

시인 T 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다. 봄의 계절 4월을 시인은 왜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을까? 어린싹이 겨울의 언 땅을 뚫어야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4월 실사에서 그 ‘싹’(희망)을 보았다. 그렇기에 4월이 잔인한 달임을 안다. 이제 미칠 일만 남았다. 지금이야말로 미쳐야(狂) 미친다(及). 비록 지금은 화려하기에 앞서 처연하고, 아름답기에 앞서 고달플지 모르지만. 미치면, 부산엑스포가 우리 곁으로 바싹 다가올 것이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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