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세월 함께한… “사진은 내 인생의 길동무” [전시를 듣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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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호 사진가 작업 변천사 한자리에
부산 아트 스페이스 이신서 개인전
오리지널 빈티지 프린트 50여 점
장례식서도 촬영 “내 사진 핵심은 일상”

사진 전문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 이신에서 작품 앞에 선 최광호 사진가. 오금아 기자 사진 전문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 이신에서 작품 앞에 선 최광호 사진가. 오금아 기자

“현상액 속에서 사진이 올라오는 것을 봤는데 흰 거품이 이는 파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가 최광호가 사진을 접했을 때 받은 첫인상이다. 그는 인화지에 사진 이미지가 떠오르는 모습에서 고향 강릉의 바다를 떠올렸다고 했다. 어린 시절 최광호는 담배를 사러 갔다가 학교 선배인 가게 주인에게 딱 걸렸다. “손을 들고 벌을 서는 동안 사진관에서 애들이 증명사진을 찍고 금방 찾아서 나오는 걸 보니 관심이 갔죠. 현상실에 들어갔는데 강한 충격을 받았어요.” 파도처럼 눈앞에 밀려온 사진, 최 작가는 지금도 그 감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최광호 사진가가 젊은 시절 다중 노출로 찍은 사진. 1977년 작품인 ‘심상일기’. 아트 스페이스 이신 제공 최광호 사진가가 젊은 시절 다중 노출로 찍은 사진. 1977년 작품인 ‘심상일기’. 아트 스페이스 이신 제공

‘최광호 사진: 빛과 중력’이 5월 5일까지 부산 금정구 장전동 아트 스페이스 이신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사진에 입문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최광호 사진’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1974년 제작된 미발표작 ‘나’부터 2023년 최근작 ‘그리다’까지. 각 작품 제작 당시 작가의 생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오리지널 빈티지 프린트 50여 점을 전시한다. 전시는 작가가 고교 시절 본인을 다중촬영 기법으로 찍은 사진부터 시작한다.

“40년도 훨씬 지난 사진을 오리지널 프린트 그대로 가져다 걸었어요. 특별히 누가 사진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는데 나를 찍고 또 찍어서 이미지를 중첩했죠.” 작가는 사진 속에서 ‘젊은 시절의 상처’를 표현하고자 했던 어린 최광호을 발견했다. 청년 시절 찍은 가족사진의 경우 인물의 얼굴이 지워져 있다. “아마 죽음에 대해 생각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최광호 '생명선' 시리즈. 1990년 작품인 ‘생명선_뉴욕지하철2’. 아트 스페이스 이신 제공 최광호 '생명선' 시리즈. 1990년 작품인 ‘생명선_뉴욕지하철2’. 아트 스페이스 이신 제공

최 작가는 가족 장례식장에서도 카메라를 들었다. 작가는 대학 때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간호하면서 사진으로 기록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사진을 찍으니 염을 하는 사람이 도망을 갔어요. 사회적 편견이 있을 때였으니 본인이 찍히는 게 싫었던 거죠.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이 직접 염을 해야 했어요.”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사진을 다수 선보인다. “유학 전에는 ‘이렇게 사진을 찍겠다’는 자아가 많이 드러나는데, 유학 이후에는 사진에 대한 해방감이 느껴져요.” 그는 교수에게 ‘사진은 무엇인지’ 물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선생님이 ‘사진은 사는 것이다’라는 거예요. 그때부터 고민했죠. 그러다 나온 것이 ‘한 컷 반’ 시리즈예요.” 한 장의 사진에 반을 더해 이미지를 확장했다. 좋은 인생, 나쁜 인생이 없다는 생각을 담은 ‘한 롤의 인생’ 같은 작품도 뒤이어 나왔다.

최광호 작가가 몸에 현상액을 묻혀 롤 인화지에 퍼포먼스를 하고 완성한 작품. 오금아 기자 최광호 작가가 몸에 현상액을 묻혀 롤 인화지에 퍼포먼스를 하고 완성한 작품. 오금아 기자
최광호 사진가는 최근 드로잉 작업으로 새로운 '사진 찍기'에 도전한다. 아트 스페이스 이신 제공 최광호 사진가는 최근 드로잉 작업으로 새로운 '사진 찍기'에 도전한다. 아트 스페이스 이신 제공

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최 작가에게 교수는 ‘네(최광호) 사진의 중심이 나보다 강하다’는 답을 돌려줬다. “내가 하고 싶은 걸 가운데 놓고 고민하면 그게 작가구나 생각했어요. 일본에서 사진에 대한 생각을 배웠다면 미국에서는 표현이라는 것을 배웠죠.” 뉴욕 지하철 지도 위에 사진을 더한 ‘생명선’ ‘태극기’ 시리즈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최 작가는 최근에는 드로잉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 입술을 찍어서 표현하기 때문에 ‘찍는다’는 의미에서는 사진과 통한다고 생각해요. 잠이 안 올 때 드로잉 작업을 하기 때문에 저는 이걸 ‘밤에 쓰는 연애편지’라고 불러요.”

최 작가는 주변 일상을 보는 습관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내 사진의 핵심은 일상이죠. 예술은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것이죠. 지금도 사진을 찍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워요. 나를 성찰하는 사진, 사진은 내 인생의 길동무라고 생각해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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