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부산에 전국 첫 ‘꿀벌 연구 연합체’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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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의 꿀벌 전문 연구기관 설립 필요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꿀벌 집단 폐사가 더 심해져 양봉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9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전국 양봉농가 대표들이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장면. 연합뉴스 지난해에 이어 올해 꿀벌 집단 폐사가 더 심해져 양봉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9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전국 양봉농가 대표들이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장면. 연합뉴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꿀벌 실종 사태가 재연되고 있다. 사태가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됐다. 꿀벌 실종이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대규모 집단 폐사가 해를 거듭해 반복되면서 양봉농가의 위기감도 높아졌다. 꿀벌 실종에 따른 피해는 양봉농가뿐 아니라 꿀벌을 매개로 한 다른 과일·채소 농가로도 확산된다. 전국의 양봉농가들은 정부를 상대로 집단행동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일 전국 17개 시도의 꿀벌 담당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갖는 등 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에서는 전국 처음으로 양봉농가, 전문가, 시가 함께하는 ‘꿀벌 연구 연합체’가 출범했다. 국가 차원의 근본적 대응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텅텅 빈 벌통. 한국양봉협회 제공 텅텅 빈 벌통. 한국양봉협회 제공

◆해를 거듭해 심해진 꿀벌 집단 폐사

한국양봉협회는 4월 현재 소속 농가에 있는 벌통 153만 7270개 중 61.4%인 94만 4000개에서 꿀벌이 폐사한 것으로 집계했다. 벌통 하나에 1만 5000마리에서 2만 마리의 벌이 사는데 이를 환산하면 최소 141억 6000만 마리 이상의 꿀벌이 사라진 셈이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70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져 농가들이 충격을 받았는데 해를 거듭해 더 악화됐다. 우리나라 전체 양봉농가의 14%를 차지하는 경남에서는 이번 겨울 70% 안팎의 꿀벌이 사라졌다. 부산도 양봉농가가 많지는 않지만 개별 농가 피해는 심각하다. 부산에서는 140여 양봉농가에서 2만 봉군 규모를 유지했는데 올봄 10% 정도인 2000봉군만 남았다. 한국양봉협회 부산지회 양호진 회장은 “지난해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양봉 농가들은 텅텅 빈 벌통을 보며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양봉협회는 지난달 9일 정부세종청사 농식품부 앞에서 회원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꿀벌 집단 폐사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회원들은 붕괴 직전의 양봉 산업을 직시하고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10일 부산에서 발족한 ‘꿀벌 연구 연합체’. 부산시 제공 지난 10일 부산에서 발족한 ‘꿀벌 연구 연합체’. 부산시 제공

◆올해 과일·채소값 급등 우려

꿀벌 집단 폐사는 양봉 농가의 피해에 그치지 않고 꿀벌을 매개로 한 과채 농가로 확산된다. 국제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1개가 꿀벌 수정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올해 꿀벌 집단 폐사가 심각한 상황으로 확인되면서 과수농가의 벌통 쟁탈전이 시작됐다. 밀양 얼음골 사과 농가들은 벌통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김해 한림의 딸기 하우스 농가들도 수정 작업을 제대로 못해 생산량이 크게 줄고 기형은 늘었다. 참외, 수박 등 대부분 과채 농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화분 매개 벌의 임대료도 치솟았다. 최근 과수용 벌통 1개를 빌리는데 5만 원 안팎이던 가격이 10만~11만 원으로 배 이상 뛰었다. 이 때문에 과채 농가의 생산비가 올라가고 생산량이 줄어드니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된다.


◆기후변화 전 지구적 꿀벌 실종

올해 집단 폐사 주범으로 우선 지목되는 것은 응애라는 진드기다. 응애는 벌통에 기생하며 애벌레의 체액을 빨아먹고 병원성 바이러스를 옮긴다. 이 때문에 양봉 농가에서는 응애 방제를 하는데 올해 방제제에 대한 내성이 부쩍 높아졌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 등과도 연계된다. 꿀벌은 월동이나 여왕벌의 산란 과정 등에서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이상기온은 꿀벌 생태계에 치명적이다. 200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꿀벌이 집단 폐사하는 군집붕괴현상(CCD)이 첫 보고된 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꿀벌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또 꿀벌 먹이원인 밀원 감소, 농약 과다 사용, 등검은말벌의 침공, 심지어 전자파 문제까지 다양한 요인이 꿀벌 생태계 파괴에 영향을 미친다. 국내 최초로 ‘꿀벌동물병원’을 개원한 꿀벌 전문가 정년기 원장은 “근본적으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의 문제가 있겠지만 개별 양봉농가를 들여다보면 꿀벌 폐사의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며 “철저한 현장 조사와 분석, 연구, 그에 따른 처방 등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산에서 꿀벌 연구 시작한다 ?

지난 10일 꿀벌 연구와 양봉 산업 발전을 위한 민·관·학 협의체인 ‘꿀벌 연구 연합체’가 전국 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부산에서 결성됐다. 이날 결성식에는 양봉농가, 전문가, 시 관계자 등이 참석해 꿀벌 집단 폐사 피해 상황과 원인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부산의 경우 양봉농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최근 도심 양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꿀벌 생태계와 환경 문제에 대한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연합체를 꾸리게 됐다. 지금까지 시 차원에서 양봉농가에 방제제 등을 지원했으나 앞으로 꿀벌 생태계와 도시 환경 전반에 대한 연구와 양봉 산업 발전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합체는 앞으로 전문가 인력풀 확충 등을 통한 체계적 연구로 꿀벌 질병과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국가 차원의 근본적 대책 수립해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집단 폐사 사태를 겪으며 ‘양봉 산업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등 대책을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농가 지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 각국은 꿀벌 실종을 국가적 재난으로 보고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등 근본 대책을 강구 중이다. 미국은 201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부 차원의 위원회를 구성했다. 유럽연합(EU)도 꿀벌 보호를 위한 범정부연합체를 구성했으며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유럽 전역의 자연을 되살리기 위해 2030년까지 화학 살충제 사용을 50%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우리의 경우 국가 차원의 근본 대책은 고사하고 대학 수의학과에 꿀벌 전문가 과정도 없는 실정이다. 주요 국가들은 어느 대학 수의학과에서나 꿀벌을 가르치고 전문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조현수 시 동물방역팀장은 “꿀벌 폐사를 단순히 방제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인 도시 환경 차원에서 접근해 보자는 취지로 연합체를 발족했다”며 “꿀벌 생태계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감안할 때 우리도 국가 차원의 전문 연구기관 설립 등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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