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국회 합의부터 거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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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외신 통해 가능성 시사
국민적 동의 바탕 위에 추진돼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때 군사 지원은 살상무기까지 포함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대량 학살, 중대한 전쟁법 위반 등의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은 “우크라이나 지원은 인도·경제적 부문에 국한한다”는 기존 입장과는 차이가 크다. 국방부도 지난 17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살상무기 지원은 없다”고 공식 밝혔는데, 대통령이 갑자기, 그것도 외신을 통해 뒤집은 것이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짐작조차 어렵고, 느닷없는 대통령의 발언에 국민은 크게 당혹하게 됐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은밀하게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했다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됐다. 그런데 최근 미국 정보당국의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으로 작성된 기밀문건을 통해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하라는 미국의 압력에 고심하는 대화 내용이 공개됐다. 또 155mm 포탄 수십만 발을 대여 형식으로 미국에 제공키로 한 계약이 있었고, 실제로 포탄이 해외 목적지로 보내졌다는 언론 보도도 터져 나왔다. 정부가 국민의 눈을 속여 왔던 정황이 속속 드러난 셈이다. 윤 대통령이 이번에 군사 지원을 대놓고 천명한 것은 이런 저간의 사정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심사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인터뷰가 오는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진행됐다는 점이 미심쩍다.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언급은 미국의 요구를 사실상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것인데, 양국 간 정상회담 전에 윤 대통령이 미국 측에 선제적으로 일정한 성의를 보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무기 지원과 정상회담을 거래했다는 비판마저 나오는 형편이다. 여하튼 그 결과 우리는 이제 러시아의 반발을 노심초사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난감한 처지가 됐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양국 관계는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 안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사안을 큰 고민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했을 리는 없을 테다. 그러나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면서 자청해서 분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드는 건 몹시도 위험한 일이다. 나라의 미래에 해가 될지 이득이 될지, 만에 하나라도 국민의 안전이 위협을 받지는 않을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서 판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이번 무기 지원 언급은 성급했다고 할 수 있다. 대외 군사 지원은 대통령 혼자만의 결단으로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국민적 동의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인 국회 합의를 먼저 거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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