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6·25 피란민 고통 전하는 28장의 스케치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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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양손/윤대경 글·윤중식 그림

<할아버지의 양손> 표지 <할아버지의 양손> 표지

<할아버지의 양손>은 아버지의 그림과 아들의 글이 만난 책이다.

‘석양의 화가’로 불린 고 윤중식 화백이 한국전쟁 피란길에 그린 스케치 스물여덟 장을 볼 수 있다. 평양 출신의 윤중식은 중학생 때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이 상을 받으며 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일본 유학 후 윤중식이 평안북도 선천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윤중식 일가도 아픈 이별을 겪었다. 피란길에 헤어진 아내와 큰딸은 생사를 알 수 없게 됐고, 막내딸도 하늘나라로 떠났다. 다섯 명이던 가족이 부산에 도착했을 때 두 명만 남았다. 저자인 아들 윤대경은 당시 네 살이던 자신은 영양실조로 퉁퉁 부어 있었다고 책에 썼다.

윤중식은 자신이 겪은 아픔과 고통을 그림에 옮겼다. 그는 종이만 보이면 챙겨 두었다가 피란길 현장에서 스케치했다. 윤중식은 첫 번째 스케치 뒷면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뒀다. ‘이 초안은 남하하는 피란민들입니다. 후일 작품으로 제작하여 보려고 합니다. 먹지 못하고, 주야를 막론하고, 남으로…. 모든 것을 단념하고….’ 책에 소개된 전쟁 삽화는 국립현대미술관 6·25전쟁 70주년 전시회 ‘낯선 전쟁’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됐다. 2022년에는 성북구립미술관 윤중식 10주기 기념전시회 ‘회향’에도 전시됐다.

아들은 책에서 ‘그리지 않고는 숨을 쉴 수도, 살 수도 없었을’ 화가 윤중식을 보여준다. 전쟁으로 아내와 두 딸을 잃은 아버지가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을지, 이후 그가 남긴 작품 속에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가득했을지 들려준다. 네 살배기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아버지의 왼손, 아들의 운명을 바꾼 아버지의 오른손. ‘너무나도 고단했을 할아버지(윤중식)의 양손’에 감사를 전하는 아들의 마음이 독자에게까지 전해진다. 윤대경 글·윤중식 그림/상수리/114쪽/1만 9500원.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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