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시민공원과 금정산에서… 두 무용가의 실천하는 예술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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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즉흥춤축제' 박은화
"다름 안다는 것, 삶의 큰 의미"

'금정산생명천지굿' 강미리
"결과적으로 내 삶에 변화 와"

23일 오후 부산시민공원 흔적극장에서 열린 ‘제16회 부산국제즉흥춤축제’에서 전문 예술가들이 릴레이 즉흥춤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세계 151명의 무용수들이 참가한 이번 축제는 부산대와 신라대 등지에서 워크숍과 즉흥춤 공연으로 3일 동안 진행됐다. 정종회 기자 jjh@ 23일 오후 부산시민공원 흔적극장에서 열린 ‘제16회 부산국제즉흥춤축제’에서 전문 예술가들이 릴레이 즉흥춤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세계 151명의 무용수들이 참가한 이번 축제는 부산대와 신라대 등지에서 워크숍과 즉흥춤 공연으로 3일 동안 진행됐다. 정종회 기자 jjh@
2023 금정산생명천지굿이 열린 고당봉에서 강미리(가운데) 부산대 교수. 김은영 선임기자 2023 금정산생명천지굿이 열린 고당봉에서 강미리(가운데) 부산대 교수. 김은영 선임기자

지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부산에선 의미 있는 무용 행사 두 건이 거의 동시에 열렸다. 제16회 부산국제즉흥춤축제(BIMPRO·21~23일)와 2023 금정산생명천지굿(22일)이다. 이들은 공연장을 벗어나 갤러리(부산대아트센터)로, 대학 캠퍼스(부산대·신라대)로, 부산 대표 공원(부산시민공원)으로, 부산의 진산 금정산 고당봉과 고당샘·금샘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산성마을광장)을 찾아 한바탕 춤판을 벌였다. 춤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도 두루두루 어울렸으며, 눈과 귀가 즐거웠을 뿐 아니라 자기 안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행사는 부산대 무용학과에 재직 중인 60대 두 무용가가 중심이 됐다. 두 사람은 박은화 현대무용가와 강미리 한국무용가다. 이들에겐 공통점도 많다. 교육자이자 무용가, 기획자(예술감독)란 점이 똑 닮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사흘간 이들을 지켜보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춤 혹은 삶에 대해 가지는 열정과 에너지가 대단했다는 거다. 두 사람 모두 인생 1막을 마감하는 대학교수 정년이 채 2년이 남지 않았는데도 이처럼 열과 성을 다한다는 점에서도 우러러보이게 했다. 또한 예술가로서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남달라 보였다.

물론 이 두 사람만의 힘으로 이 큰 행사가 치러진 것은 아니다. 훌륭한 춤 도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후배일 수도, 제자일 수도, 지인일 수도 있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BIMPRO의 경우, 운영위원(강미희 강희정 김옥련 노영재 박은화 성은지 신은주 이태상 함수경)이 대표적일 것이다. 금정산생명천지굿은 행사를 공동 주최한 강미리 할 무용단과 박상용 융 무용단, 그리고 2023금정산생명천지굿 추진위원회가 될 수 있겠다. 이들을 한마음으로 뭉칠 수 있게 한 데는 두 교수의 집념이 컸겠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2023 금정산생명천지굿이 열린 금샘 공연 장면. 김은영 선임기자 2023 금정산생명천지굿이 열린 금샘 공연 장면. 김은영 선임기자
2023 금정산생명천지굿이 열린 금샘 공연 장면. 김은영 선임기자 2023 금정산생명천지굿이 열린 금샘 공연 장면. 김은영 선임기자

행사가 끝난 뒤 ‘수고했다’는 덕담을 주고받던 중 강 교수에게 물었다. “금정산 고당샘~고당봉~금샘~금정산성광장에 이르는 코스에 동행한 참가자로선 매우 힐링 되는 기분이었지만, 매년 힘들게 행사를 여는 이유가 새삼 궁금합니다.” 그러자 강 교수는 “남들은 내 돈 쓰면서 그런 일 한다고 이해를 못 했는데 점점 함께하고자 하는 인연이 늘어나고, 큰 계획이 생기면서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짐을 느낀다”는 답을 들려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학생들에게 무대에서 겪지 못하는 색다른 경험을 통해 행복과 성취감을 주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내 삶에 변화가 왔고, 그 변화에 충실하게 살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2023 금정산생명천지굿이 열린 금정산성광장 공연 장면. 김은영 선임기자 2023 금정산생명천지굿이 열린 금정산성광장 공연 장면. 김은영 선임기자

이번 공연에 처음으로 참여한 김호범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개인의 소망뿐만 아니라 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비는 의미있는 행사였다”면서 “관객도 함께 춤추고 즐기는 시간이어서 좋았고, 정성을 다한 많은 출연진의 노력에 감동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일반인들은 보기 힘든 큰 규모의 굿 이외에도 국악 연주와 동래학춤, 젊은 대학생의 역동적 군무가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문화행사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3일 오후 부산시민공원 흔적극장에서 열린 ‘제16회 부산국제즉흥춤축제’에서 전문 예술가들이 릴레이 즉흥춤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세계 151명의 무용수들이 참가한 이번 축제는 부산대와 신라대 등지에서 워크숍과 즉흥춤 공연으로 3일 동안 진행됐다. 정종회 기자 jjh@ 23일 오후 부산시민공원 흔적극장에서 열린 ‘제16회 부산국제즉흥춤축제’에서 전문 예술가들이 릴레이 즉흥춤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세계 151명의 무용수들이 참가한 이번 축제는 부산대와 신라대 등지에서 워크숍과 즉흥춤 공연으로 3일 동안 진행됐다. 정종회 기자 jjh@

박 교수 역시 행사 전후로 비슷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춤은 공간과 시간, 거기에 따른 에너지에 의해 우리 움직임의 특징이 만들어집니다. 똑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어요.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큰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인정받고 싶으면 상대를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그런 것들이 어울렸을 때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번 즉흥춤축제 워크숍에 참가한 권유리야 부산외국어대 교수는 “키보드 위의 손가락과 모니터에 고정된 눈의 억압 속에서 잃어버린 몸을 찾아내 돌려받는 시간이었다. 앞과 뒤, 아래와 위, 왼쪽과 오른쪽이라는 단순함만으로도 몸이 얼마나 많은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느끼게 해 주었다. 세계적인 섞임의 시대, 글로벌 디지털 시대에 몸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즉흥춤축제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제16회 부산국제즉흥춤축제 첫째 날인 21일 부산대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술·융합 즉흥' 공연 장면. 김은영 선임기자 제16회 부산국제즉흥춤축제 첫째 날인 21일 부산대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술·융합 즉흥' 공연 장면. 김은영 선임기자

기술·융합 즉흥춤 공연을 선보인 신은주(부산국제무용제 운영위원장) 무용가 역시 교육적인 측면을 거듭 강조했다. “저도 젊었을 때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산에 가라고 하면 산에 갔고, 바다로 가라고 하면 바다로 갔습니다. 지신밟기를 한다고 온종일 시장통 헤매고 다니기도 했어요. 그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했는데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안무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는 건 확실합니다.”

무용학과의 잇단 폐과로 이젠 부산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문득, 학교 밖 혹은 극장을 뛰쳐나온 이런 춤 행사를 보면서 대학이 춤 교육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부산의 춤 미래는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올해로 15년을 맞이한 ‘AK(Arts Korea)21 안무가 육성’ 프로그램이나 ‘국제안무가캠프’ 같은 기회가 부산의 좋은 인프라가 될 수 있는 만큼 부산 춤의 르네상스는 지금부터 새로 만들어 간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듯싶다. 두 교수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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