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청년과 일자리 미스매치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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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경제부 산업팀장

구인난 심각하다던 부산 제조업계
처우 좋은 사업장은 젊은 근로자 붐벼
‘청년이 험한 일 싫어한다’ 냉소 말고
업계의 근로환경 개선 노력 돌아봐야

삼성전기가 국내 최초로 공개한 부산사업장의 MLCC 생산 라인 클린룸. 삼성전기 제공 삼성전기가 국내 최초로 공개한 부산사업장의 MLCC 생산 라인 클린룸. 삼성전기 제공

지난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다녀왔습니다. 글로벌 시장에 IT와 전장용 MLCC(전류를 품고 있다가 전자회로에 일정한 신호를 주는 핵심 제어부품)를 공급하는 삼성그룹의 주요 생산 거점입니다. 스마트폰에서부터 의료 장비,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MLCC 없이 제작할 수 있는 전자제품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엔지니어들의 친절한 설명에도 전공자가 아니라 그 복잡다단한 공정이 완벽하게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장비를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삼성전기 측의 설명보다 기자의 관심을 더 끈 건 부산사업장의 분위기였습니다.

앳된 얼굴로 삼삼오오 사업장 안을 오가는 근로자는 대부분 20~30대였습니다. 공정 견학 과정에서 근무조 동료끼리 모여 앉아 티타임을 갖는 모습은 또 얼마나 훈훈하던지요. 취재진 사이에서 ‘공장이 아니라 대학 캠퍼스 같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부산에서 사라진 청년 근로자는 여기 다 모여 있다’라며 농담을 던지는 이도 있었습니다.

물론 대기업 제조공장 가놓고 팔자 좋은 소리 한다며 못마땅한 분도 있을 겁니다. 네, 맞는 말입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복지가 좋은 대기업 직장이니 젊은 근로자가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긴 분위기가 이런데 젊은이들이 현장 꺼린다는 말이 과연 맞나’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부산시 지산학 브랜치 21호점인 동아플레이팅은 올 초 MZ세대가 찾는 제조업체로 전국적인 화제가 됐습니다. 도금 업체하면 떠오르는 가혹한 근로 환경을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해 말끔하게 제거했더니 견학 왔던 학생들이 일터에 반해서 입사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결코 중소기업을 폄훼하려고 꺼내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래도 날로 심각해진다는 부산의 구인난 속에서도 유유자적하는 업체가 있다면 그 비결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게 아니겠습니까?

부산시와 부산상공계 모두 모두 구인난의 원인을 ‘일자리 미스매치’에서 찾습니다. 청년은 일할 곳이 없다고 하고, 기업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 이 황당한 상황 말입니다.

그렇다고 양쪽을 맺어지면 구인과 구직으로 이어지느냐? 그건 또 아닙니다. 애초에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거든요.

양쪽이 원하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일단 부산 청년은 십수 년째 숱한 지표를 통해 원하는 건 ‘급여와 복지’라고 말해오고 있습니다. 매년 청년 인구 유출을 진단한답시고 나오는 분석이 늘 뻔한 결론으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기업은 ‘고스펙이 아니라 숙련 인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청년이 제조업을 싫어해서’ 인력을 구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모든 부산 청년이 대기업 대우를 받을 만큼 고스펙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고스펙이 아닌 청년이라도 이들 사업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데 그들마저도 그러질 않습니다. 이쯤 되면 청년이 험하고 힘들어서 제조업을 거부하는 건지, 급여와 복지가 박해서 제조업에 지원하지 않는 건지 따져봐야 합니다. 고향에 남고 싶은 청년에게 ‘묻지도, 따지지 말고 일부터 배우라’는 업계 제안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요즘 애들 편한 자리만 찾는다고 무시하다 내 사업장의 근무 환경이 시대에 뒤처져 있는 건 아닌지 업계에서도 돌아볼 시점이 됐습니다.

삼성전기 취재 후 다음 날 인구 통계 자료를 들여다 봤습니다. 부산의 올 1분기 청년 취업자수에서 남녀 숫자가 역전됐더군요. 청년 취업자 수는 늘 여성이 남성을 앞서는 게 부산인데 말입니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급격하게 여성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이 원인입니다. 남성 취업자 수가 코로나 펜데믹에도 상대적으로 견고했던 건 역시나 제조업 위주의 취업자가 많았던 덕분입니다. 결국, 부침없는 경제 생태계를 유지하려면 제조업 중심으로 기초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진리를 재확인한 거지요.

부산의 한 중견 제조기업 오너는 해외 출장을 마치고 새벽에 귀국해도 공장을 돌아보며 작업장 정리 상태와 안전 점검을 하고 귀가한다고 합니다. 본관 건물을 새로 올린 뒤에도 뷰가 좋고 채광이 가장 잘 되는 층을 임원들이 쓰지 않고 구내식당으로 내줬다고 했습니다.

부산의 모든 제조업체가 대기업 수준의 급여와 복지를 줄 수는 없지만 꾸준히 근로 환경과 복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만 상생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구직자와 구인 기업 사이에도 상생과 배려가 절실한 시대가 됐습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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